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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문제의 핵심은 ‘자주’가 아니라 ‘예속’이다
1월 23일 발표된 미 국방부 국가방위전략(NDS)은 표면적으로는 ‘동맹의 현대화’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 문서가 한국에 던지는 실제 메시지는 자주국방의 고양이 아니라 한반도 안보 구조의 근본적 전환이다. 요지는 명확하다. 미국은 더 이상 한반도 방어의 1차 책임을 지지 않겠으며, 주한미군은 한국 방어에 묶인 상주군이 아니라 대중국 장기전에 동원되는 인도·태평양 기동군으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놓인 쟁점이 바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다. 이 문제를 자주국방이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은 핵심을 비켜간 해석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 확대가 아니다. 미국의 부담을 덜고 한국을 미중 전략경쟁의 전진기지로 편입시키는 구조적 장치다. NDS를 저술한 당사자인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이 1월 25일부터 이틀간 한국을 찾았다. NDS의 세부 이행 방안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ㅡ 2026 NDS의 구조적 전환
NDS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본토 방어와 서반구 안정에 우선순위를 둔다. 중국 견제는 장기적, 체계적 경쟁으로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미군의 후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년 말 공개된 미 국방부의 ‘오버매치 브리프’(군사력 평가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과 재래식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패배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니 직접적인 재래식 충돌의 위험은 동맹국에 이전하고 자신은 지휘 통제라는 결정적 지점만을 장악하겠다는 얘기다.
한국에 적용된 표현인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critical but limited) 지원”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 한 문장에 미국의 계산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전쟁의 문턱과 핵심 국면은 미국이 관리하되 재래식 방어와 인명, 재정 부담은 한국이 떠안으라는 요구다. 자주라는 언어와도 연결되어 있지만 본모습은 책임의 전가다.
ㅡ 전략적 유연성의 실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 입장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주한미군이 역외 작전에 투입되는 순간 한국은 선택과 무관하게 분쟁 당사국의 지위에 놓인다. 중국의 관점에서 한국은 미군의 발진기지이며 우선적 군사 표적이 된다.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의 안보 위험을 구조적으로 증폭시킨다. 미국은 한국을 그들의 총알받이로 만들려는 것이다.
2006년의 한미 간 합의가 ‘반쪽짜리’로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필요성에 대한 존중만을 미국은 한국의 의사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원칙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했다. 미국이 지금까지도 ‘공식 인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 핵심 요구가 아직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ㅡ 대중국 전략과 한국의 위치: 병참기지화의 위험
NDS가 그리는 대중국 구도에서 한국의 위치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은 제1도련선에서의 압박을 강화하되 직접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한다. 대신 동맹국의 군사력, 재정, 산업 기반을 총동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방위비 증액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방위산업 기반을 미국의 군수 공급망에 편입시키고 한국군을 미 전략의 하위 구성 요소로 고정시키려는 의도가 본질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위아래가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은 중국의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축이라고 언급했다. 11월 방한한 미 해군참모총장은 대만 유사시와 관련해 “한국군도 분명히 일정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중국 억제에 활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예측”이라고 언급했다. NDS가 요구하는 발언들이다. 당연히 한국군의 역외 작전 참여를 전제하고 있다. 우리와 상관없는 전장에 끌려 나가는 것이다.
ㅡ 전작권 환수의 착시
작년 11월 14일 발표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 전략적 유연성이 간접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 이후 미국은 한국의 대중국 역할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해 왔다.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의 방한 목적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공식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는 이에 추가해 역내 유사시 한국군의 참여를 요구했을 것이다.
NDS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자주국방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만 언급했다. 거듭 말하건대 자주국방은 핵심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NDS를 전작권 환수의 기회로도 해석한다. 착시다. 천진난만한 낙관이다. 미국이 ‘힘’을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마당에, 그리고 전작권을 쥐고 있음으로 해서 한국이 미국의 지휘 하에 묶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순순히 전작권을 내줄 리가 없다. 냉정히 계산할 필요가 있다.
ㅡ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동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침묵이다. 명확한 반대의 표명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언은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승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한중 관계의 구조적 악화이자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 축소다.
이대통령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작년 8월 말 한일 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향하는 특별기 안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군의 유연화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그 이후 이대통령의 입장이 일관성 있게 외교에 투영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한미군사령관 등 인사들의 연이은 발언에 한국정부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을 상대로 분명히 말해야 할 때다.
이대통령은 1월 5일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올해가 전면적인 한중관계 복원의 원년이라 선언했다. 완전복원까지 갈 길이 있다는 의미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장애물로 놓여 있다. 미군이 대만해협으로 출동하는 것을 한국이 허용한다면 중국으로서는 한국을 적국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상황이 벌어지기도 전에 한중관계는 ‘석자 얼음’이 열자가 되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아울러 NDS가 한국에게 대북방어의 일차적인 책임을 부여한다 해서 미국이 대만해협 작전에서 한국을 ‘열외’로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미군은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대신 한국군의 출동은 거부한다는 식의 거래도 주권국가의 선택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사령부의 선심에만 의존하는 하위부대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생존을 위한 결단을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시절을 지속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미국에의 예속을 수긍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진짜 대한민국의 운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침묵하다가는 나라가 결딴날 판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분명한 거부 입장 없이 자주국방이나 전작권을 논하는 것은 순서를 거꾸로 놓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대한민국 외교관. 1962년생이며, 1985년 외무고시 19회로 외교부에 입부한 직업 외교관으로 약 33년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외교부 인사로 보건복지부 국제협력관을 역임한 뒤 주앙골라 대사로 발탁된 이력이 있습니다.
▶저술 및 활동: 외교관 퇴임 이후 ‘창천(蒼天)’이라는 필명으로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명품외교의 길>과 <브라보 한미동맹> 등이 있으며, 한국 외교와 한미 관계 등에 대해 비판적이고 독창적인 견해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 외교부(외무부)의 구조와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고, 한미동맹과 외교 방향에 대해 근본적 성찰을 촉구하는 등 전통적 외교 관행에 대한 대체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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