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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과 노조법2조 당사자들이
하청노동자 교섭권 무력화 및 원청책임 면죄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5.11.24)

 

ㅡ 들어가며:  7,040명의 목소리, 13개 원청을 향하다

 

2026년 1월, 금속노조 산하 24개 하청 지회·분회가 현대자동차, 한화오션, 현대제철 등 13개 원청사를 상대로 일제히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섭 요구에 참여한 조합원 수는 최소 7,040명에 달하며, 대표하는 하청업체는 100개가 넘는다. 이는 지난해 8월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하여 하청 노동자의 교섭 상대방으로 원청을 포함하도록 한 이후, 하청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원청과의 직접 교섭에 나선 역사적 사건이다.

 

사용자 단체는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수백 수천 개의 하청 노조와 개별 교섭을 하게 되었다"며 복수노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시행령에 못 박을 것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와 마찬가지로 어용 노조를 내세워 하청 노동자들의 진정한 요구를 묵살하고, 지금처럼 초과 착취를 감행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금속노조는 이러한 기우를 씻을 수 있는 명쾌한 방안을 제시했다. 하청업체들을 금속노조 체계의 지부 단위로 묶어 원청과의 교섭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원청교섭의 실무적 해법을 넘어, 그동안 숙원이었던 '산별교섭 활성화'를 위한 돌파구를 여는 전략적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1.  금속노조의 원청교섭 요구: 구체적 내용과 의미

 

금속노조가 제시한 원청교섭 방식의 핵심은 개별 하청업체 노조들이 산발적으로 원청과 교섭하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의 지회 단위로 집약하여 교섭한다는 점이다. 이는 사용자 측의 "수백 수천 개 노조와 어떻게 교섭하느냐"는 반론을 제도적으로 무력화하는 동시에,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한 교섭은 경기지부 현대자동차남양비정규직지회, 전북지부 현대자동차전주비정규직지회, 충남지부 현대자동차아산사내하청지회,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울산) 등 4개 지회로 집중되고, 이들 지회는 소속 하청업체 44곳, 조합원 878명을 대표한다.

 

한화오션을 상대로는 경남지부 웰리브지회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2곳이 교섭을 하며, 대표하는 하청업체는 22곳, 조합원은 750명이다.

 

현대제철을 대상으로는 광주전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충남지부 현대제철내화조업정비지회 등 3개 지회가 교섭을 요구했으며, 조합원 수는 2,536명, 하청업체는 19곳이다.

 

현대모비스 원청교섭에는 울산지부 울산현대모비스지회와 충남지부가 참여하며, 이 외에도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 롯데케미칼, GS칼텍스 등이 교섭 대상 원청에 포함되어 있다.

 

ㅡ 사용자 측 '교섭 부담' 주장의 허구성
사용자 단체가 제기한 ‘수백 수천 개 하청 노조와 개별 교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금속노조의 이번 방식으로 완전히 반박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44개 하청업체가 있지만 교섭 상대는 4개 지회다. 한화오션은 22개 하청업체가 있지만 교섭 상대는 2개 지회다. 원청 입장에서는 수십 개가 아니라 몇 개의 지회와만 교섭하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방식은 복수노조 상황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용자가 어용 노조를 내세워 진정한 노동자 요구를 묵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반면 금속노조의 지회 단위 교섭은 민주적으로 조직된 산별노조의 체계를 활용하는 것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를 왜곡 없이 전달하면서도 교섭의 효율성을 담보한다.

 

결국 사용자 측의 '교섭 부담' 주장은 원청교섭 자체를 회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며, 지금처럼 하청 노동자에 대한 초과 착취를 지속하려는 의도를 감추기 위한 것일 뿐이다.

 

2.  원청교섭에서 산별교섭으로: 금속노조의 전략적 과제

 

금속노조는 이번 노조법 2·3조 개정안과 그 시행령 제정을 둘러싼 쟁점을 계기로, 그동안 숙원이었던 '산별교섭 활성화'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형식상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실질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참여 사업장들은 대부분 중소 하청 부품사로서 대표성이나 실제적 역량이 미약하며, 사용자 측인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는 금속노조의 핵심 요구안에 대해 자신들의 안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나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노조법 개정은 산별교섭을 활성화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된 이상, 원청은 더 이상 교섭 테이블에서 빠질 명분이 없다. 따라서 금속노조는 개별 원청교섭을 넘어, 이를 산별교섭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사용자들 입장에서도 산별교섭을 하게 되면 번거로운 여러 차례의 하청 교섭을 할 필요가 없다. 각 사업장, 각 하청업체와 개별적으로 교섭하는 것보다 산별 차원에서 공통 기준을 합의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물론 사용자들은 산별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이 상향 평준화되는 것을 꺼리지만, 교섭의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산별교섭이 그들에게도 유리하다.

 

다만 아직 업종 간, 그룹사 간 근로조건이나 임금 격차가 크고 개별 사업장의 구체적인 요구가 다르므로, 산별교섭을 2원화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1층(산별/원청 단위)은 공통 기준을 합의하는 '상위 협약’(프레임 협약)이다. 여기서는 산업 전체 또는 그룹사 전체에 적용될 최저임금 기준, 노동시간, 산업안전 기준, 차별시정 원칙, 고용안정 조치 등을 합의한다. 이는 하청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원·하청 간, 사업장 간 격차를 줄이는 토대가 된다.

 

다음, 2층(사업장/업체 단위)은 현장 적용을 조정하는 '사업장 협약’(로컬 협약)이다. 각 사업장이나 업체의 구체적 조건에 맞춰 1층에서 합의한 프레임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추가적인 요구사항은 무엇인지를 협의한다. 예를 들어 산별 차원에서 최저임금 기준을 합의했다면, 각 사업장에서는 그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2층 구조로 산별교섭을 설계하면, 사용자 측이 흔히 내세우는 "사업장마다 다 다른데 어떻게 한 번에 하냐"는 반론을 제도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공통 기준은 산별로 합의하되, 개별 조건은 사업장별로 조정하는 방식이므로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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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민주노총이 ‘교섭창구 단일화 반대! 노조법 시행령 폐기 촉구!
농성 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ㅡ ‘의제 한정형’ 산별교섭: 원청을 테이블에 앉히는 전략

산별교섭의 제일 큰 난관은 뭐니뭐니해도 "원청이 테이블에 앉느냐"이다. 원청은 하청 노동자와의 교섭을 최대한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청이 가장 꺼리는 것은 "사용자성 인정=전면 책임"이다. 원청입장에서는 하청 노동자의 모든 노동조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따라서 첫 단계로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영역(단가·물량·작업방법·안전)에 한정해서 "이 영역만이라도 원청이 교섭하자"는 의제 한정형 산별교섭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즉 첫판은 '임금 전부'가 아닌 산업안전, 차별시정, 고용안정, 단가 연동(하청 임금에 영향) 같은 원청 영향력이 명확한 의제부터 잡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의 경우, 원청이 작업 방법과 안전 기준을 결정하므로 원청의 책임이 명백하다. 차별시정 역시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이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은 원청의 정책에 기인한다. 단가 연동 문제도 원청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단가가 하청 노동자의 임금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원청이 교섭에 참여해야 할 명분이 충분하다.

 

이렇게 의제를 한정하면 원청도 "우리는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다"며 산별교섭을 회피하는 변명을 하기 어렵다.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영역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라는 것이므로, 법리적으로도 정당하고 실무적으로도 실현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의제 한정형 교섭이 정착되면, 점차 교섭 의제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

 

3. 대기업 정규직 지부의 참여가 산별교섭 성공의 열쇠다

 

산별교섭 성사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것은 당연히 원청 사업장의 지부나 지회가 산별교섭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전략적 사업장을 대거 포함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 관련 회사들만 해도 전체 금속노조 18만여 명 조합원 중 11만여 명으로 60%를 차지한다. 이들 대기업 정규직 지부/지회가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으면, 산별교섭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들 대기업 정규직 지부/지회가 산별교섭에 참여하면, 원청 역시 교섭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대기업 노조가 하청 노조의 산별교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할 때, 재벌 대기업의 원청은 교섭에 불참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게 된다. 원청 노조가 참여한다는 것은 원청의 핵심 생산 라인 노동자들이 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교섭 테이블을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원청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 역시 산별교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명확한 자구책적 이유가 있다. 정년연장 등 대기업 노조의 숙원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회적 지지와 투쟁력이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 등 다가오는 산업구조조정의 파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개별 기업 단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산업 전체의 고용 안정과 전환 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산별교섭이야말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자신의 미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4.  초과 착취 구조 해체를 향한 ‘대단결의 길’로 나가자

 

노조법 2·3조 개정은 한국 노동운동이 수십 년간 염원해 온 ‘원청 사용자 책임’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이 개정의 성과를 완성하고 재벌의 ‘초과 착취’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단체의 낡은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산별교섭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금속노조가 제시한 하청 지회 중심의 교섭 집중화 전략은 사용자 측의 ‘교섭 혼란’ 주장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산별교섭의 현실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제 노동운동은 이원화된 산별교섭 모델을 통해 사업장 특수성이라는 반론을 극복하고, 의제 한정형 교섭을 통해 원청을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특히,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기주의를 청산하고, 하청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산별교섭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중대한 책무를 안고 있다. 연대만이 재벌의 초과 착취 구조를 해체하고, 모든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며, 다가오는 산업 대전환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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