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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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요란한 폭격 소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싹튼 치명적인 ‘오판’에서 시작된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감행한 공습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군 수뇌부가 폭사하면서 정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란은 즉각 보복에 나서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의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 세례를 퍼부었고, 전선은 순식간에 주변국으로 번졌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을 향한 포문을 열며 전쟁의 불길을 키웠다.

 

갑작스러운 지도부 공백 속에서도 임시 체제를 가동한 이란 정부는 주춤하기는커녕 가장 서슬 퍼런 언어로 응수하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적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맛보게 하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겠다”며 날 선 결전의 언사를 내놓았다. 후계자 후보인 라리자니는 “미국의 심장을 찌르겠다”고 말한다. 워싱턴이 당혹스러워하는 지점이 여기다. 지도부만 제거하면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 기대했건만 기다리는 이란 민중의 ‘봉기’는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고지도자의 부재는 혁명수비대 내의 극단적 강경파와 보수적인 성직자 그룹이 득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거센 민주화 시위 속에서도 굳건했던 혁명수비대의 결속력은 미국이 꿈꾸던 ‘내부 균열 시나리오’가 얼마나 허망한 망상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심지어 반정부 세력들조차 지금은 나라를 구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미군과의 전쟁을 앞두고 승리를 확신했던 베트남의 호치민처럼 이란은 지금 미국에 ‘결정적 패배’를 안길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에 차 있다.

 

이란의 자신감은 허세가 아니다. 전쟁의 흐름을 자신들이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러시아의 집권여당 의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미국의 역사는 249년에 불과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이미 2500년 전에 세워졌다”며 누가 더 끈질기게 버틸 수 있겠느냐고 미국을 조롱했다. 전쟁의 판을 짜는 능력과 인내하는 힘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이란 지도부가 이토록 자신만만한 배경에는 2500년 전 그들이 겪었던 뼈아픈 패배의 역사와 거기서 얻은 값진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래 버티는 자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그리스 원정에서 크나큰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당시 크세르크세스의 대원정은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의 초인적인 300인 검투사들의 방어를 뚫고 전술적 승리를 거뒀음에도, 결국 아테네가 앞장 선 살라미스 해전과 스파르타 군을 주력으로 한 플라타이아이 육전에서 무너졌다. 페르시아는 압도적인 체급만 믿었을 뿐, 거리와 보급의 문제 그리고 해양과 육지의 지형적 장애를 너무나 가벼이 여겼다.

 

또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동맹이 금방 깨질 것이라 과신했고, 정작 자신들의 동맹 내부에 생길 균열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결국 멀리서 건너온 대제국으로서는 끝까지 버텨내는 상대를 꺾을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오늘날 미국도 과거의 페르시아처럼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정벌에 나섰지만 좁은 해협과 험준한 지형이라는 벽을 앞에 두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현대판 살라미스’가 될지 모르고, 미 지상군이 맞닥뜨릴 자그로스 산맥은 이란이 미군을 괴멸시키는 ‘21세기 테르모필레’ 전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가장 예민한 약점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견디기 힘들어진다는 점에 있다. 미국이 눈에 보이는 파괴에 집중할 때 이란은 시간과 지형이라는 병목을 이용해 제국의 조급함을 사냥하려 든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작 4주 정도를 내다보고 있지만 이란은 4년이라도 버틸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도다. 여기에 믿었던 우방국들의 결속마저 흔들리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격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란의 반격을 받은 미군기지 소재 걸프 국가들도 지금은 이란을 규탄하고 있으나 과연 언제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에 서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쟁의 기한이 늘어날수록 이들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하메네이를 지도자로 섬겨온 역내 시아파 종교인들의 친이란, 반미 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동상이몽의 미국과 이스라엘 간 결속이 지속될 필연성도 없다. 이란은 군사적 열세를 체제 유지와 애국심에 호소하는 국민적 지지로 메울 것이며, 미국의 무차별적인 타격을 분산시키면서 승리의 조건 자체를 무력화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실장이 이 말을 했다가 미국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 수많은 전쟁 중에는 이긴 것도 패한 것도 있었다. 과거 미국의 승리 공식은 명확한 목표, 국제적 정당성, 전후 질서 설계, 그리고 국내 정치의 결집이라는 네 축 위에서 작동했다. 하지만 이번 이란 전에서는 이 중 단 하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미국이 이란의 정권 교체를 입에 담은 순간 전쟁의 목표는 이미 현실을 넘어섰다. 전쟁 후 어떤 이란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참담한 기억이 좀비처럼 다시 고개를 드는 대목이다. 당시 미국은 적의 수도에 성조기를 꽂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통치’와 ‘재건’에서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압도적인 군사력만으로는 정치적 공백을 메울 수 없었고 그 틈에서 종파 갈등과 테러리즘이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아무리 막대한 자금과 미사일을 쏟아 붓는다 해도 현지의 민심과 사회 시스템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이 절절한 교훈은 이란이라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늪 앞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결국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전쟁을 정치적으로 끝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공중전이 길어지면 미국은 결국 목표를 낮춰 협상하거나, 아니면 사실상의 점령을 위해 지상군을 투입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상군 투입은 아프간의 악몽을 소환하는 ‘정치적 자살 버튼’이나 다름없다. 트럼프는 지상군 투입은 필요 없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미 국방부가 ‘끝없는 전쟁’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확답을 피하는 사이에 치솟는 유가와 물가는 미국 유권자들의 지갑을 정조준하고 있다. 전쟁 지지율이 25%에 불과한 상황에서 중간 선거를 치러야 한다면, 트럼프에게 이 전쟁은 선거판에 미칠 뜨거운 열풍이 아니라 차가운 냉소가 될 것이다.

 

결국 이 전쟁은 어느 한 쪽의 완승이 아니라 어정쩡한 중단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파괴된 이란 시설들의 목록을 수치화해 명분상 승리를 선포하며 서둘러 출구를 찾을 것이고, 이란은 체제를 지켜냈다는 사실만으로 실질적인 판정승을 거뒀다고 선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기지 못한 전쟁은 미국에게 파멸의 시작을 상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호한 종전은 평화가 아니라 미국의 리더십이 부인되는 새로운 무질서의 시작일 뿐이다. 미국이 언제든 판을 뒤엎을 수 있다는 식의 무도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전쟁 이전의 질서는 회복될 수 없다.

 

우리의 대응은 명확해야 한다. 에너지와 해운 리스크를 즉시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을 구실로 지상군 투입이라는 함정에 우리가 자동으로 끌려 들어가는 상황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또 주한미군이 병력이나 장비를 전장으로 이동시킨다면 첫째, 자의적인 행동은 사전에 막아야 하고, 둘째, 나가겠다면 주한미군의 딱지를 떼고 움직이라고 지시해야 하며, 셋째, 일단 나간 인원이나 물자는 귀환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전쟁은 북한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준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처럼 핵이 없는 정권이 겪는 비참한 현실을 보며 평양은 핵 능력 증강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북미대화의 문을 닫아걸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역할은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폭도 미국의 도우미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피스메이커’여야 한다. 북한이 ‘남북한’이라는 용어를 거부한다면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정상회담을 모색하는 전략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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