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2.21
주한미군공군.png
(사진=MBN캡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2월 18-19일 간 주한미군이 서해에서 F-16 전투기 수십 대와 전략 폭격기, 정찰기 등을 동원해 대규모 훈련을 했다. 중국을 겨냥했다. 당연히 중국 공군이 대응 출격하면서 미중이 서해상에서 대치했다. 거의 동시에 미일 공군은 동중국해에서 미 전략 폭격기 4대와 항공자위대 전투기 11대를 투입해 훈련을 했다. 미국은 한국도 함께 할 것을 제안했지만 불참하겠다고 하자 한국에 훈련 내용과 지역을 알려주지 않은 채 일본과만 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한국은 미군이 마음대로 운용하는 전략자산이다.

 

이제 시작이다. 이런 ‘예외’는 ‘상시’가 될 것이다. 한국은 미 전투기 발진기지요 지상군의 출동기지에 중국의 공격목표가 된다.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상관없다. 어차피 한국은 미국의 작전계획에 수용된 ‘항공모함’일 뿐이다. 또 우리가 알든 말든 미국이 상관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한국은 미국의 눈에 주권국가가 아니다. 문제는 둘이다. 주한미군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미군이 우리의 파트너인 중국을 도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고위직 인사가 한국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은 1월 말 한국 방문 중에 한국을 ‘모범 동맹’(model ally)이라고 추어준데 이어, 2월 중순 뮌헨 안보회의 기간 유럽 동맹국들의 군사 책임 확대 논의와 연결하여 한국을 ‘모범 사례’로 언급했다.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어 역할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미국이 요구하는 국방비 지출 GDP 3.5% 수준 준수를 약속했다는 이유다. 가슴 벅찬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모범 동맹’이다.

 

한국 외교에서 한미동맹은 오랫동안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건이었고 출발점이었으며 때로는 생각을 멈추게 하는 전제였다. 동맹을 지킨다는 말은 곧 안보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왜냐고 묻는 일은 위험하다. 동맹을 의심하면 안보가 흔들리고, 안보가 흔들리면 국가는 위태로워진다. 지난 60-70년 간 되풀이해온 ‘한미 동맹 강화’란 미국이 원하는 것을 전부 퍼준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런 뜻도 없다. 이제 우리는 ‘왜’냐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동맹이, 어떤 조건에서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미군의 공군 훈련이 바로 이 개념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작전이다. 미국의 자의대로 한국을 들락거리며 미국이 원하는 전략을 수행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의 주권은 논외다. 이것은 군사 운용의 세부 전술이 아니다. 한국 외교가 감내해야 할 선택의 폭을 규정하고, 한반도 평화 논의의 한계를 정하며,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고정시키는 정치적 장치다. 전략적 유연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곧 한국이 어떤 외교적 지형 위에 서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들린다.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맞춰 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겠다는 말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경우 이 개념은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방어라는 비교적 명확한 임무에서 벗어나 인도·태평양 전반을 포괄하는 미국의 전략 구상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뜻한다. 주한미군은 더 이상 북한만을 상정한 억제력이 아니라 중국을 둘러싼 지역 질서 재편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선언된 결과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미 방향은 제시돼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관리 가능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 분쟁에 우리 의사에 상관없이 자동으로 연루되지 않는다는 조건 부여를 통해 주한미군의 역할 확장을 조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치적 의사 표시였을 뿐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등 뒤에서 한국의 외교관들은 미국의 의도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었고, 미국은 한국 상대들에게 ‘모범 협상가’의 이름다운 호칭을 달아주었다. 노무현의 생각은 소수의견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졌다. 전략적 유연성은 제대로 된 논의의 대상에서 벗어나 관성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두 번 연이어서 들어선 보수 정권 하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이었고,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정치적 계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군의 자의적인 이동과 작전에 이견을 단다는 것은 곧 동맹을 흔들려는 의도라는 우려와 규탄이 언제나 앞섰고, 질문을 미루는 것이 국가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여겨지기만 했다. 그렇게 전략적 유연성은 선택되지 않은 선택으로 굳어졌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은 이 흐름을 외교와 안보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사드는 단순한 방어 체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드 배치로 인해 한국은 더 이상 미중 전략 경쟁의 변방에 서 있는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이제 그 경쟁이 직접 투영되는 공간 가운데로 이동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임무와 배치는 한반도만을 기준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고 한국은 이에 따른 외교적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사드의 겨냥점에 중국이 있다.

 

북한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읽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북한은 외교적 수사보다 군사 구조에 주목해 왔다. 병력이 어디에 배치되고, 어떤 체계로 연동되며, 유사시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한지를 주시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중국 견제와 지역 작전에 깊이 연계될수록 북한의 인식은 단순해진다. 미국은 한반도를 한층 더 중요한 군사적 작전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 압박은 그들 체제의 존속과 직결된다는 판단이다. 주한미군이 미 본토, 일본, 괌의 전력과 통합 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북한에게 과거 수준을 초월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논의의 토대는 약화되어 왔다. 북한이 반복해 요구해 온 안전 보장은 선언이나 합의문에 적힌 문구가 아니다. 군사 구조의 변화, 위협 인식의 완화가 핵심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역할은 오히려 점점 더 확장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을 체제 안전과 교환할 수 있다고 판단할 여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핵무력 고도화와 적대적 관계 설정은 북한 논리로는 체제 유지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

 

2021년 이후의 한미 공동성명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더 이상 감추지 않는다.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한미동맹의 적용 범위를 ‘한반도’에서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명시적으로 확장했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주한미군은 이제 한반도 방어에 한정된 군사력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미국의 지역 전략 속에서 기능하는 동맹 자산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전략적 유연성은 논쟁을 거쳐야 할 선택지가 아니라 이미 깔려 있는 전제가 되다시피 했다.

 

문제는 이 전제가 한국의 국익과 조화를 이루느냐는 점이다. 결코 아니다.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할수록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어려워지기만 한다. 첫째, 우리는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려 국가위기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둘째, 중국과의 외교를 추진함에 있어 자율적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한국은 미국이 전개하는 중국 견제 구도의 한 축일 뿐이다. 셋째,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는데 지대한 어려움에 봉착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우리가 용인하는 순간 우리는 그러한 국가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게 된다. 모순이다.

 

‘모범 동맹’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모순을 덮는 역할을 해왔다. 충실하고 책임감 있는 동맹국이라는 영광스러운 평가를 듣는 마당에 어찌 미국의 의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칭찬의 이면에는 질문을 줄이고 선택을 미루라는 엄한 압박이 깔려 있다. 동맹에 성실할수록 요구는 늘어나고, 그런 요구를 물리칠 수 있는 여지도 줄어드는 법이다. 2025년 8월 말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한국은 미국의 기본정책에 거슬리는 정책을 취하기 어렵다”는 요지의 이재명 대통령 언급은 외교적 수사로만 머물러야 한다.

 

동맹은 신앙이 아니라 관계다. 전략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동맹을 유지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동맹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이를 회피한 채 ‘모범생’의 위치에 머무는 태도는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하지 않은 선택이 쌓이면서 외교적 의존이 굳어질 뿐이다. 이제 너무 늦었는지 모른다. 주한미군이 마음대로 서해상에서 중국을 겨냥해 공군훈련을 할 상황까지 이르렀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에라도 반드시 멈춰 세워야 한다.

 

지금 우선 필요한 것은 동맹을 둘러싼 도덕적 찬반이 아니다. 그 구조와 작동 방식을 묻고 따져 언어로 구체화해내는 작업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정치적 언어와 조건을 말할 수 있는 외교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이에 이미 정해진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제는 미국을 향해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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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글이

고맙게 잘읽었습니다.

이 기사를 보지않았다면 미군흐름을

보지못하는 큰 우를 범할뻔 했네요

2026.02.22 11:26:25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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