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국제 시사평론가의 런던 르포를 통해 본 ‘대국 콤플렉스’의 종말
등록일 : 2025.07.15
영국 시민들.jpg
런던 중심부의 빅토리아역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영국 시민들.


아일랜드 출신의 국제 시사평론가 브라이언 맥도널드는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세계정세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저널리스트다. 그는 최근 자신의 섭스택 칼럼*에서,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던 영국이 어떻게 ‘부유한 환상만 남은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냉철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특히 그의 눈에 비친 최근의 영국은, 겉으론 여전히 대국의 기운을 뽐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사회적 쇠퇴가 깊이 스며든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섭스택(Substack)은 작가가 자신의 글을 유료 구독자에게 직접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말한다. 


ㅡ 한때 세계의 수도였던 런던, 지금은…

 

한 세대 전만 해도 런던은 자신을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도시 특유의 오만함으로 활기찼다. 자본은 홍수처럼 흘러들었고, 소호의 지하 클럽이나 하원의 바에서조차 ‘역사’와 ‘특권’의 공기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2000년대 초, 런던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비쌌지만, 기묘하게도 누구에게나 ‘나의 도시’처럼 느껴질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맥도널드는 “런던은 로스앤젤레스처럼 허세 부리지도, 싱가포르처럼 닦고 광내지도 않았다.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매력이었다”고 회상한다.

 

ㅡ 무너진 무대, 관습이 된 쇠퇴

 

하지만 지금의 런던은 전혀 다르다. 공연은 계속되지만, 무대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저자는 “요즘 영국에서 쇠퇴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문제는 모두가 그것을 오래된 외투처럼 자연스럽게 입고 있다는 점”이라고 진단한다.

 

런던의 거리를 걸으면, 이제는 노숙자들이 텐트를 치고 모여 있는 장면이 일상이 되었고, 아무도 쫓아내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 “국가가 빈곤과 비공식적인 휴전 협정을 맺은 것 같다: ‘넌 거기 있어, 우리는 외면할게.’”

 

기차는 더 이상 우아할 의지가 없는 듯 덜컥거리고, 상점들은 마치 축제가 끝난 뒤 남은 시장처럼 잡동사니만 내놓는다. 도시의 공기에는 1990년대 동유럽의 쇠락한 분위기가 감돈다.

 

살인적인 물가도 일상이다. “평범한 펍에서 맥주 한 잔이 7파운드(약 12,600원), 캠든식 조식 한 끼 가격이면 리스본(포르투칼 수도-주)에선 두 가족이 식사할 수 있다.”

 

자금은 여전히 유입되지만, ‘진짜 번영’은 사라졌다. 이 도시는 쇠퇴를 재난이 아니라 관습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부서진 연석, 망가진 표지판, 월세를 감당 못해 지친 계산원의 얼굴,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조용한 붕괴’를 만든다.

 

ㅡ  “영국은 더 이상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

 

이런 쇠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냉정한 통계로도 입증된다. 영국 국가경제사회연구소(NIESR)조차 “영국은 더 이상 부유한 국가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2007년 이후 실질임금 상승률은 고작 2.2%에 불과하다. 그 이전 17년간 42%가 올랐던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버밍엄, 북동부 등 산업도시의 평균 가계소득은 이제 슬로베니아, 몰타의 최빈 지역보다 낮다. 저자는 “영국의 쇠퇴는 갑작스러운 붕괴가 아니라, 신사적인 투항처럼 서서히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10년간의 긴축정책, 공공서비스의 축소, 인프라 방치, 그리고 결코 완공되지 않을 고속철도 프로젝트 등은 영국 사회의 에너지를 앗아갔다.

 

더 이상 부유하지 않은 영국.png.jpg
 

 

ㅡ 정치적 무능, 그리고 ‘대국 콤플렉스’

 

정치권의 무능도 영국 쇠퇴의 중요한 원인이다. 전 수상 캐머런의 브렉시트 도박은 영국이 더 이상 ‘대국’ 콤플렉스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을 드러냈다.

 

브렉시트 이후 무역은 얼어붙고, 투자도 빠져나갔다. “한때 명성과 안정성으로 런던에 머물던 외국 기업들은 점차 떠났다. 그 시점에서 잃은 건 단순한 부가 아니라, 용기였다.”

 

주택 문제도 심각하다. 집은 더 이상 ‘보금자리’가 아니라 투기의 대상이 되었고, 사회이동성은 사라졌다.

영국의 ‘영국다움’은 이제 관습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ㅡ “이 모든 쇠퇴는 필연이 아니었다”

 

가장 뼈아픈 점은, 이 모든 쇠퇴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충분한 자산과 제도, 혁신의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명성과 유산도 돌보지 않으면 쇠퇴한다. 문화 자본은 현명하게 써야 하며, 자부심은 유지가 없으면 향수로 변한다.”

 

지금 영국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 망가졌는지에 대한 솔직함, 그리고 그 책임을 묻는 용기다.

그것이 없다면, 쇠퇴는 한 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국 전체의 운명이 될 수 있다.

 

ㅡ “Cruel Britannia”로 남은 대영제국의 그림자
 
칼럼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던 대영제국. 이제는 유스턴(Euston) 위로도 햇살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며, “이제 더 이상 ‘Rule Britannia(브리타니아여 지배하라)’가 아니라, ‘Cruel Britannia(잔혹한 브리타니아)’다”라는 쓸쓸한 문장으로 끝난다.

 

이 칼럼을 통해서 맥도널드는, 영국이 더 이상 ‘부유한 나라’라는 신화를 유지할 수 없게 된 현실, 그리고 그 쇠퇴가 어떻게 일상과 사람들의 표정, 도시의 구석구석에 새겨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국’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 채, 점점 더 초라해지는 영국의 오늘이, 어쩌면 내일의 다른 유럽,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칼럼 원문 보기]
https://substack.com/inbox/post/168148533?utm_campaign=post&utm_medium=web&triedRedirect=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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