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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유주의 기자가 ‘환상 산업 복합체fantasy industrial complex’를 조용히 허물어간다 — 한 번에 벽돌 하나씩.
“러시아의 탄압은 여전히 매우 선별적이고 제한적입니다. 전쟁에 반대하더라도, 탄압을 받기보다는 차에 치이거나 떨어지는 벽돌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매번 외출할 때마다 벽돌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걱정하지 않잖아요?”
이 글은 이름과 달리 러시아가 아닌 네덜란드 회사인 <모스크바 타임즈>*의 놀라운 보도로 시작한다. 명백한 이유로 익명으로 작성된 이 기사는 현대 러시아에 대한 지배적인 미디어 내러티브(서술)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도전장을 던진다. 이것은 크렘린을 옹호하거나 권위주의를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작된 히스테리가 만연한 시대에 드문 ‘냉정한 현실주의’다.

* <모스크바 타임즈>는, 이름과 달리 러시아 언론이 아니라 네덜란드에서 자본을 대고, 리투아니아 리가에서 편집되는 매체이다. 실제로 <모스크바 타임즈>는 러시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대표적인 반체제, 반푸틴 언론으로,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해외 간첩 조직’으로 간주될 정도이다.
저자는 1년간 해외에서 지낸 뒤 체포나 감시, 혹은 더 나쁜 상황을 각오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러시아 기자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삶이었다. 이상하고, 복잡하며, 모순적인 현실의 삶. “물론, 저는 약간 두렵습니다,”라고 그는 쓴다. “특히 친구가 ‘당신은 FSB((러시아 연방보안국)가 당신을 체포할까봐 두렵지 않나요?’라고 물을 때요.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편집증적이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에서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더 많습니다.”
이런 설명은 러시아를 마치 눈 덮인 북한(North Korea with snow)처럼 묘사하는 서방 미디어의 시선과는 잘 맞지 않는다. 두 세계를 오가는 사람으로서 점점 우리가 두 개의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데일리 메일>과 <슈피겔>이 그리는 러시아에는 군화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지고, 시민들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오직 암호로만 말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실제 러시아가 있다. 1억 4,500만 명이 살아가는 그곳에는 바가 늦게까지 열려 있고, 국경은 잠겨 있지 않으며, FSB에 심문당하기보다는 전동 스쿠터를 탄 바보에게 치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탄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체포도 있고, 징역형도 있다. 일부는 소셜 미디어 게시물 같은 사소한 일로 인한 것이다. 금지선이 분명히 존재하고, 특히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그 선을 넘으면 결과는 심각할 수 있다. 기자 역시 이를 인정한다. “당연히, 저는 매우 조심스럽게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경찰이] 제가 모스크바 타임즈나 다른 금지된 미디어에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당한 벌금이나 심지어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인 국가로서는 시스템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억압적이지 않다. 대규모 동원도 없고, 군 복무 연령의 남성들은 자유롭게 다닌다. 나이트클럽은 붐비고, 레스토랑도 가득하며,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심지어 로스토프나 보로네시 같은 도시들은 서방의 상대 도시들보다 안전하게 느껴진다. 암스테르담이나 파리, 바르셀로나보다 확실히 안전하다.
오늘날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친팔레스타인 콘텐츠를 올렸다는 이유로 체포될 수 있다. 이건 가설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는 일부 서유럽 국가들은 소셜 미디어 댓글 때문에 매년 수천 명을 구금하고 있다. 이것은 정당화가 아니라, 비교다. 그리고 이 이중잣대의 시대에서 비교는 중요하다.
너무 많은 서방 언론이 러시아가 항상 하강하고 있다는 스토리라인(이야기의 진행과정)에 집착하는 것 같다. 제재, 분리, 도덕적 자세를 정당화하기 위한 끔찍한 공포의 극장처럼 말이다. 평범한 삶이 계속된다는 생각, 사람들이 여전히 웃고, 춤추고, 우정을 쌓고, 사랑에 빠진다는 사실은 금기로 여겨진다. 마치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배신인 것처럼.
더 나쁜 것은 수년간 러시아에 발을 들인 적 없는 사람들이 쓴 기사들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종종 베를린, 리가, 심지어 브루클린에 기반을 두고, 자신들이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보도하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크렘린에 가까운 소식통”을 인용한다. 오늘날 모스크바의 권력에 진정으로 가까운 사람은 서방 미디어와 대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반역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가 접하는 것은 계시처럼 포장된 모호하고 출처 없는 속삭임뿐이다. 통제된 유출이 있을 때는 소수의 승인된 곳, 예를 들어 로이터, CNN, 아마도 뉴욕 타임즈로 간다. 나머지 보도는 추측, 환상, 재활용된 트위터 스레드*로 채워진다.
*트위터 스레드(Thread)는 트위터에서 여러 개의 트윗을 연결하여 하나의 긴 이야기를 만들거나 연속된 내용을 게시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트위터의 글자 수 제한 때문에 여러 개의 트윗으로 나누어 내용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편향은 모든 단락에서 흘러나온다. 완벽한 보도자료 영어로 말하고, 서방 엘리트들의 세계관과 우연히 일치하는 “러시아 관리”의 익명 인용, 냉전 스릴러에서 가져온 것 같은 도시와 사람들에 대한 묘사. 러시아가 제재, 전쟁, 지정학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를 끈질기게 거부한다. 싱가포르나 두바이처럼 번창하는 것은 아니지만, 붕괴의 내러티브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달 데일리 비스트(미국의 뉴스 웹사이트-주)의 숨 가쁜 기사 “블라디미르 푸틴이 가장 두려워하는 여성을 만나보세요”를 보자. 장군도, 이탈한 전 올리가르히도(러시아 재벌-주), 사이버 전쟁 천재도 아니다. 명백히 32세 페미니스트 시인이다. 다리아 세렌코 자신도 그 터무니없음에 웃으며, 기사를 읽다 거의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활동가 그룹은 100명의 후원자 구독자도 모으지 못한다. 그녀는 푸틴의 천적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 허구는 러시아어를 모르고, 국가를 이해하지 못하며, 솔직히 신경 쓰지도 않는 사람들이 영어 뉴스룸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저널리즘이 아니라 정치적 팬픽션*이다. 서방 관객을 위한 기분 좋은 도덕 이야기에서, 모든 반푸틴 인사는 사자 같은 영웅이고, 모든 기사 제목은 만화 악당의 독백처럼 처리된다. 이런 식이면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
**팬픽: '팬 픽션(Fan Fiction)'의 줄임말로, 기존 작품의 팬이 원작의 등장인물, 설정 등을 활용하여 창작한 2차 창작물을 의미한다.
이 기자가 강렬하게 포착하는 것은 망명자의 정신분열증, 즉 들은 것과 실제로 보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많은 망명 언론인이 반전 성향의 망명자 버블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망명 언론이 점점 러시아 사람들보다 러시아 디아스포라*를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 바빌론 유수(幽囚) 이후 동방 및 서방에 산재한 팔레스타인 이외 지역의 유대인을 가르킴. 그들은 유대적 종교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저는 Z-애국자들과 기묘한 계기로 접점을 찾은 퀴어들, 외딴 숲에 은둔한 히피,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동체 공간에서 좌파, 퀴어, 예술가들이 게릴라식 예술 행동을 벌이는 모습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지옥 같은 풍경이 아니다.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진짜 삶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적응한다. 항해한다. 해결책을 찾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조용히,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마도 기자가 조용한 편집증의 순간을 묘사하는 대목일 것이다. 동료와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동료가 속삭인다. “저기 앉아 있는 남자가 있어요. 당신 뒤에, 등을 우리에게 돌리고, 바 뒤에… 그가 버스에서 나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들은 혹시 몰라 서둘러 자리를 떴다.
심지어 그 긴장감도 점차 사라진다. 결국 그는 방을 살피고 어깨 너머로 보는 것을 멈췄다. 두려움을 대체한 것은 부정이 아니라 익숙함이었다. 히스테리가 아닌 현실주의에 맞춰진 생존 본능이다.
결국 그는 머물기로 선택한다. 안전해서도, 쉬워서도 아니다. 그가 쓴 대로, “나는 여기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놓치는 것, 떠나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훨씬 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첫 번째 것에 맞서기로 선택했습니다.”
이 조용한 용기야말로 가장 전복적인 구절일지도 모른다. 현 상황에 불만이 있는 모든 러시아인이 파리나 베를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페름이나 사마라, 카페와 기차 칸에 남아, 현실에 뿌리를 두고 수입된 공포를 거부한다.
서방에서는 그들에 대해 많이 읽을 수 없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웃고, 울고, 일부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브라이언 맥도널드 | 2025년 7월 11일
(원문보기) https://27khv.substack.com/p/what-one-russian-journalist-saw-when
※ 저자 브라이언 맥도널드(Brian MacDonald는 아일랜드 출신 언론인으로, 러시아를 기반으로 정치, 스포츠,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며 활동해왔다. 과거 RT.com(러시아 투데이)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최근에는 Substack과 X(전 트위터) 등에서 러시아와 서방 언론의 보도 관행,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 사회 등에 대한 의견과 분석을 활발히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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