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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한 동지의 애끊는 호소가 계속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산하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상근 활동가로 근무했던 함계남 씨는 소속 조직의 부당한 대우를 폭로하는 글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수많은 단체 중 그 어느 곳 하나 공식적으로 사태의 진상조사를 요구하거나, 공공운수노조 측의 행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 한 장 낸 곳이 없다. 이처럼 진보진영이 내부 문제에 대해 '도덕불감증'에 빠진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사태를 묵인하는 '공범'이 될 뿐이다.
ㅡ 중학생 아들까지 고공농성에 나서게 한 절박한 상황
함계남 씨는 최근 5월 30일자 글에서 중학생인 아들이 고공농성에 합류하게 된 사유를 밝히면서, 당시의 절박했던 심정을 얘기했다. 여기서 아들은 "엄마를 잃을 것 같아" 지방에 있는 아빠한테 연락해 고공농성을 하게 됐고, 함계남 씨의 아들은 아빠와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공농성에 합류했다는 것이다.(http://www.ulham.net/national/34609:)
특히 중학생 아들의 발언은 어른들의 행동을 나무라는 듯 아프게 다가온다. "엄마! 오늘 노조에서 전화 안 왔어? 해고가 잘못되었으니, 출근하라고 말이야!"라고 물으며, "설마, 노조인데 해고하고 끝내겠어?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아이의 순수한 믿음은 노동조합의 본래 취지와 현실의 괴리를 더욱 뼈아프게 보여준다.
ㅡ 의료연대 서울지부의 부당행위와 비인권적 태도
함계남 씨는 또한 "의료연대 서울지부의 뒤틀린 인권 의식과 추완항소"(울산함성, 5/15), "노동조합에서 실업급여를 차단하고 있다?"(울산함성, 4/29), "5인 미만 사업장이라 해고가 정당하다'고 말한 사람은, 민주노총 간부가 아니다"(울산함성, 4/2) 등의 글을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상황을 지속적으로 폭로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 중 하나는 함계남 씨가 노동조합으로부터 해고된 후 실업급여를 신청하려 했을 때 노동조합이 '이직확인서' 제출을 거부한 일이다. 노동자의 기본적 생계 보장을 위한 실업급여마저 차단하는 행위는 노동조합의 기본 가치에 완전히 반하는 행동이다. 또한 의료연대본부장 박씨는 부당해고 구제 신청 심문 회의에서 "5인 미만이므로 구제신청을 각하해야 한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는데, 이는 노동법을 악용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전형적인 기업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함계남 씨의 통장이 압류된 사건이다. 5월 7일 함계남 씨는 자신의 급여통장이 압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한 활동가에 대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ㅡ 방영환 열사 사건에서 드러난 유사한 패턴
이러한 문제는 함계남 씨 가족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방영환 열사의 딸 방희원 씨의 녹취 발언이 공개되었을 때도 유사한 문제가 드러났다. 당시 노동당과 공공운수노조를 중심으로 구성된 대책위 관계자들이 유족인 방희원 씨에게 "열사의 시신이 부패될 우려가 있다"는 말로 방희원 씨로 하여금 투쟁의 수위를 낮추도록 사실상 종용했다는 내용이었다(관련기사: http://www.ulham.net/project/23126)
울산함성이 당시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방희원 씨는 애초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해성운수 사업주에 대해 엄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책위 측이 "시신이 부패될 우려가 있다"는 말로 방희원 씨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면서 투쟁 요구수준을 '처벌'에서 '사과'로 낮추게 됐다.
방영환 열사의 고귀한 희생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은 동지들은 유족을 설득해 강력한 투쟁을 벌이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동안 이 땅의 민주주의 실현과 노동해방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열사의 장례투쟁이 많은 경우 그렇게 진행되어왔다. 유가족들이 자본과 정권의 압박과 탄압 속에서 위축되어 있을 때, 진보진영의 선각적인 인사들과 주위 동지들이 적극 나서 그분들을 위로하는 한편, 적들과 올바로 투쟁하는 방법을 가르켜 주었다. 그리하여 함께 투쟁에 나섬으로써 유가족은 적들의 기만에 빠지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며, 열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열사의 고귀한 죽음을 계기로 전체 투쟁 전선이 조금이라도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열사가 저승에서나마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번 방영환 열사의 경우는 ‘대책위’가 가해자인 사측과의 타협에만 급급하고, ‘금전적 보상’에만 눈이 멀어 투쟁의 수위를 낮추도록 유가족을 ‘기만’하고, 심지어는 “시신이 부패할 수 있다”는 말로 사실상 ‘협박’을 행한 것이 아닌지 의혹을 사고 있다.
관련 법이나 사례를 보더라도 시신을 보관하는 냉장고는 시신 부패를 막기 위해 '0도에 가까운 온도로 고정'할 수 있어, 필요할 경우 충분히 열사의 장례투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 따라서 시신의 부패 방지 문제는 기술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ㅡ 침묵하는 진보진영, 내부 비판의 부재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진보진영 내부의 비판과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계남 씨의 부당해고와 실업급여 차단, 방영환 열사 유가족에 대한 기만적 설득 등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 어느 곳에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성명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은 진보진영이 추구해온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에 저항하고,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아왔다. 그러나 정작 내부에서 발생한 비리와 갑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ㅡ 대중의 신뢰 회복을 위한 내부 자정의 필요성
노동·민생문제와 같이 서민들이 절박하게 느끼는 문제에 대해 보수 양당과 그 정권들은 거의 똑같이 기만적 방식으로 처리해왔다. 그 때문에 대중의 분노와 열정은 얼마간 무디어진 상태이고, "그놈이 그놈이다" 식의 체념이 만연해 있다. 노동계와 진보 진영이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침묵 또한 현 보수세력이 일상적으로 벌이는 허위와 관료주의 작태가 우리 운동진영 내부에도 부지불식간에 깊숙이 침투하여, 많은 사람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체념을 불러일으킨 결과가 아닌지 걱정된다.
지금은 내란 세력 척결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대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진보진영은 내부 자정(自淨)의 칼끝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 내부 적폐와의 단호한 투쟁으로 이런 것들을 도려낼 수 있을 때라야, 활동가들의 투쟁과 열정은 다시금 살아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대중을 감화시켜 그들이 다시 거리로, '내란 세력 척결'로, 마침내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변혁의 길로 과감히 나서도록 만들 것이다.
ㅡ 맺으며
지금 함계남 씨의 호소는 단순한 개인적 사례가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성과 신뢰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러한 내부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결국 진보진영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진정한 변화와 진보는 외부의 적에 대한 투쟁만큼이나 내부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자정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의료연대와 공공운수노조의 갑질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자기 내부 문제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그런 진보진영과 노동계에 대해서 누가 신뢰를 보내겠는가?
공정과 정의, 연대와 평등. 이것이 진보진영이 그동안 외쳐온 가치다. 이제 이 가치를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실천해 나가야 할 때다. 함계남 씨와 같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부 문제를 투명하게 다루며, 잘못된 관행과 관료주의를 과감히 척결해 나갈 때, 비로소 진보진영은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 변혁의 진정한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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