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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헌법재판소가 비례대표 의석 할당과 관련하여 정당 득표율 3% 미만 정당에게 의석을 배분하지 않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내려진 이번 결정은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가로막던 오랜 장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헌재는 "군소정당 난립의 폐해가 심각한 경우에는 의회의 안정적 운영이라는 제도적 효용을 가질 수 있지만, 사표(死票) 증대와 선거의 비례성 약화, 새로운 정치세력의 원내 진출 차단이라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거대 양당 체제가 굳어진 한국 정치 현실에서 이 조항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을 차단하고 거대 정당의 의석만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판결 이유를 들었다.
이 결정은 진보세력이 제도권에 진입하기 위한 하나의 중대한 장애가 제거되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22대 총선 결과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3% 저지 조항이 없었다면 녹색정의당, 자유통일당, 새로운미래 등 여러 군소정당이 각각 1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60만 명에 달하는 녹색정의당 지지자들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고 정치적 의사로 반영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권자의 투표 가치 평등과 정당의 기회 균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ㅡ 사표 심리 제거가 가져올 예상 밖의 약진 가능성
하지만 이번 조치가 가져올 변화는 단순히 몇 석의 의석 증가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 헌재의 김상환(소장)·정정미 재판관이 보충의견에서 지적했듯이, "저지 조항을 통해 일정한 규모의 정치적 지지 표현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게 되면 유권자들은 사표가 될 것을 우려해 ‘당선될 것 같은 당’을 찍게 될 것"이라는 점은 한국 선거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이른바 '진보정당 사표론'으로 불리는 이러한 유권자들의 심리는, 비록 소수정당을 지지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거대 정당에 표를 던지게 만드는 주요인이었다.
이제 이러한 '사표 심리'를 유발하는 제도적 장애가 사라진다면, 실제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 진보정당에 표를 주기를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가 해소된다. 이는 진보정당이 예상외의 약진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한다. 당장 다음 총선에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가 국회에 반영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거대양당 중심의 한국 정치 구도에 균열을 내고 진보세력을 포함하는 다당제 정치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ㅡ '실리' 너머 헌재의 위헌 결정 이유를 읽다: 통치세력의 계급적 의식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진정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이 같은 '의석 몇 석 더 확보'라는 '실리'적 계산보다 헌재의 위헌 결정 이유가 담고 있는 더욱 깊은 의미이다. 헌재는 합헌 의견을 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이 '극단주의 세력의 원내 진입'을 우려하며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자극하며 중도정당보다 빠르게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에 대해, 다수 의견으로 '그럴 정도는 아니다'라고 사실상 판정했다.
이러한 다수 의견은 한편으론 우리 진보변혁 세력이 저들 통치세력을 전혀 위협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임을 의미하기에 부끄러운 일이다. 헌재가 보기에 한국 사회의 진보세력은 아직 '극단주의 세력'으로 분류될 만큼의 영향력이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진보세력이 대중적 기반과 정치적 힘을 얼마나 더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 결정은 그동안 저들이 말해온 '군소정당 난립 방지' 운운한 것이 완전히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히 입증했다. 헌재 스스로 "군소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그 수가 많지 않고, 사회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국민적 합의 도출을 방해하거나 의회의 안정적 기능을 저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비례대표 의석 배분의 대상에서 제외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밝힘으로써, '3% 문턱'이 실제로는 군소정당 난립 방지보다는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을 차단하고 보수정당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지난 통합진보당의 불법 해산 판정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통치세력(사법부를 포함한)이 명확한 계급적 의식으로 한국 사회에서 진보변혁세력의 성장을 관찰하고, 엄밀히 관리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통치세력은 진보세력이 자신들의 지배 질서를 위협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는 일정 부분 제도권 진입의 문을 열어주는 유연성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진보세력이 일정하게 성장하여 자신들의 통치를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통합진보당과 같은 탄압을 가하거나 혹은 다른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자갈을 물리려' 할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진보세력이 아직 '위협적이지 않다'는 판단하에서 내려진 '관리'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제도권 진출을 통해 한국의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겠다는 '의회주의 노선'이 얼마나 몽상에 가까운 것인지를 다시 한번 입증한다. 의회는 각 정치세력이 다투는 한 전장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 통치세력의 본질적인 성격과 그들이 진보변혁세력을 대하는 태도를 간과한 채 의회의 의석수 확보에만 매달리는 것은, 결국 통치세력의 통제 아래 놓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ㅡ 진보정당, 의회 몇 석에 연연하지 말고 노동운동과 대중운동의 성장에 복무하라
결국 한국의 진보정당이 나아갈 길은 의회 몇 석에 연연해 하면서 과거 민주노동당이 겪었던 오류를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노동운동과 대중운동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후자만이 진정으로 한국사회를 변화시킬 기본 동력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2석에 비례대표 8석을 확보하며 원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이후 당내 노선 갈등과 대중적 기반 약화, 그리고 통치세력의 탄압 속에서 결국 중도 하차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는 의회 진출이 곧 사회변혁으로 이어진다는 안이한 인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의석수 확보는 대중운동의 결과물이어야 하며, 대중운동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진보정당은 대중으로부터 유리되고 통치세력의 정치적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진보정당은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한국 노동운동의 최대 과제라 할 수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등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놓여 있다.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이들을 조직하며, 이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정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정규직 노동운동의 기득권화를 비판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숫자에 있어서나 그 힘에 있어서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 변혁운동의 주력군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고 사회변혁을 요구할 때, 비로소 통치세력은 진정으로 위협을 느끼고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의회 내에서 몇 석을 더 얻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진보정당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단순히 의석수 늘리기의 기회로만 활용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진보정당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나아갈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야 한다. 의회는 대중운동의 성과를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대중운동의 강력한 힘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의회 내에서의 진보적 역할 또한 강화될 수 있다. 대중운동의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해 헌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한국 진보정당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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