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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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다시 25%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국회가 미국과의 투자 관련 합의를 지체 없이 입법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하루 뒤 트럼프는 다시 “한국과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지만 후퇴보다는 압박의 성격을 더 분명히 드러낸 언사였다. 한국정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의 압박은 한국 내부의 논쟁과 맞물려 있다. 한국 국회에는 지난해 말부터 ‘대미투자특별법’으로 불리는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다. 한미 정상 간에 도출된 투자합의를 국내 법체계 안에서 관리하고 집행하기 위한 법안들이다. 전략적 투자 추진체계의 설치, 투자기금 조성, 집행 절차와 감독 장치 등이 주요 내용이다. 현재 이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며 여야 간 이견으로 인해 처리 시점이 늦춰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따르고 있다”는 입장이다. 추가 공청회와 숙려 기간을 거쳐 2월 말이나 3월 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트럼프의 관세 인상 조치를 계기로 정부와 여당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지금의 상황은 그들이 자초한 결과라는 식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국회 비준’이다.

 

그러나 무엇을 비준하자는 것인지는 분명히 특정되지 않는다. 이미 한미 간에 교환된 투자 관련 합의 문건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대미 투자를 규율하기 위한 국내 입법을 말하는 것인지가 미묘하게 얼버무려져 있다. 국회 비준의 대상은 국내법이 아니다. 비준은 국가가 국제법적 구속을 수반하는 약속을 체결했을 때 문제되는 절차다. 지금 쟁점이 되는 비준의 대상 역시 대미투자법이라는 가상의 법률이 아니라 한미 간에 이미 합의된 MOU 문건이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비준은 표면적으로는 옳다. 행정부 간 합의를 국회가 확인하고 통제하자는 주장 자체는 원칙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지금 요구되는 비준은 관리와 통제를 위한 비준이 아니라, 이미 미국에 약속한 투자 규모와 방향을 한국 국회의 이름으로 ‘확정’하자는 요구다. 다시 말해 향후 상황 변화와 무관하게 한국이 부담해야 할 의무를 국제적 약속으로 굳히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말이 ‘한미동맹의 강화’다.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외교에서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말은 거의 예외 없이 “미국이 원하는 것을 전부 퍼준다”는 뜻이었다. 방위비 분담, 기지 이전, 무기 구매, 그리고 이제는 투자와 산업정책까지다. 동맹 강화라는 명분 아래 한국의 선택지는 늘 좁아졌고 부담은 늘어났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비준은 바로 이 오래된 관성 위에 놓여 있다.

 

정부여당이 비준에 부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한미 합의가 조약이 아니라 MOU에 불과하며, 따라서 굳이 국회 비준이라는 절차를 거쳐 국제적 구속력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국내법을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고, 오히려 비준이라는 형식이 향후 정책 조정의 유연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견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논리 역시 불편한 질문을 애써 피하고 있다. 미국이 이 합의를 유효한 약속으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이 “비준하지 않았으니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용산기지 이전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MOU라는 이면합의 형식의 합의가 실제로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해 온 사례는 적지 않다. 문서의 형식보다 힘의 관계가 효력의 결정권이다. 그렇다면 “비준하지 않았으니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진짜로 그럴 의지와 능력이 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 과연 정부가 그런 훌륭한 결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비준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어떻게 하면 이 한미 합의를 국민의 온전한 감시와 통제 아래에 둘 수 있느냐다. 대미투자법은 바로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관건은 그 법이 투자를 ‘무조건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투자를 제대로 ‘관리하고 제어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약탈 저의를 우리가 제도화해 주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자율성을 지키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 MOU 비준은 안 된다.

 

이 대목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주목할 만하다. 중대한 여건 변화가 발생할 경우 대미 투자의 집행을 중단하거나 조정할 수 있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조항들을 포함한 법안이다. 관세 정책의 급변,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헌여부 판결, 대상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 등 여러 변수 속에서 투자 의무를 조건적으로 이행하는 구조는 합당하다. 우리 국회가 개입하고 제동을 걸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대미 강제투자는 본질적으로 수탈이다. 그것이 아무리 ‘전략적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더라도 상업적 합리성이 없는 투자는 결국 한국의 자원을 약탈하는 행위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한국은 상업적, 산업적 합리성이 있는 사업에만 참여한다는 원칙이다. 그것이 당초 미국과의 합의다. 그 원칙이 지켜지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은 국회가 맡아야 한다.

 

전반적인 경제관계 재설정 면에서 캐나다와 유럽의 사례는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캐나다 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지만 미국의 관세 압박에 일방적으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마크 카니 총리는 최근 중국을 방문해 경제협력 증진을 협의했다. 한편 유럽은 1월 중 남미 및 인도와의 FTA를 각각 체결함으로써 거대시장 접근권을 확보했다. 인도와는 국방·안보협정도 체결했다. 영국 등 유럽 정상들은 지금 연이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한국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미국과의 동맹을 당장 폐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맹은 굴복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주체적인 행위자로 인식하고 있느냐다. 관세 압박 앞에서 허둥대며 상대의 요구를 그대로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굴복이다. 주체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 상황을 통제하고 국익을 취해야 한다. 대미투자특별법, 제대로 만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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