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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렬(전 주앙골라 대사)
등록일 :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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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멕시코 시티 MIKTA 외무장관 회의.

 

누가 살리에리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아마데우스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누가 ‘믹타’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브릭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 둘 다 다섯 나라 이니셜이다.

 

국제정치 담론에서 ‘중견국’(Middle Power)이라는 수사는 기본적으로 무책임을 숨기는 도구였다. 강대국의 부담은 비켜가면서도 약소국의 무력함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자기위안이었다.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허구적 정체성이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매력적인 외교적 수사였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규범을 압도하고 국제질서의 파열음이 일상이 된 지금, 중견국이라는 명칭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책임회피를 위한 수식어인지 아니면 국제질서 수호를 위한 실천적 의지인지를 차갑게 물어야 한다.

 

ㅡ 무너지는 질서와 카니의 경고: 중견국의 존재 이유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던진 화두는 작금의 위기를 꿰뚫고 있다. 그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국제체제의 균열을 진단하면서 강대국 중심의 패권 질서도 아니고 반권위주의적 다극화도 아닌 ‘제3의 축’으로서 중견국 연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문제제기는 이상론이라기보다 ‘이대로 가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계가 온다’는 경고에 가까웠다. 그의 통찰은 세 가지 현실적 근거에 기반을 둔다.

 

첫째,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 공백을 틈타 중국과 러시아가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그러한 상황에서 다수 국가들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강대국의 선택을 강요받는 종속적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니의 경고는 도덕적 수사가 아니다. 기후 변화, 국제 금융, 글로벌 공급망, 신기술 규범, 안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핵심 영역에서 규칙이 무너지고 있으며, 임계점을 넘어서면 질서의 복원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그가 강조한 핵심은 ‘규칙을 준수할 의지와 그것을 뒷받침할 능력을 동시에 갖춘 국가들’의 집단적 행동이다. 막상 비용이 발생하는 국면에서 뒷걸음질 치는 국가는 중견국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ㅡ MIKTA의 실패와 BRICS의 확장: 왜 격차가 벌어졌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믹타(MIKTA: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라는 존재감 제로인 협의체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중견국 외교를 기치로 한국이 주도해 탄생한 믹타는 오늘날 국제 정치의 주요 국면에서 아무런 의미를 던지지 못하는 존재다. 믹타가 벤치마킹한 브릭스(BRICS)의 성장발전과 비교해 보면 그 무가치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믹타는 실패했음에도 아무도 실패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브릭스는 내부의 이질성과 정치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질서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그 동력은 명확한 ‘문제제기’에 있다. 서구 중심의 금융 질서에 대한 구조적 불만, 달러 패권에 대한 반발, 개발 금융에서의 대안 모색이라는 실질적인 공동 이해관계가 그들을 묶었다. 2014년 출범한 신개발은행(NDB) 설립은 그 결속의 상징적인 결과물이었다.

 

반면 믹타는 탄생의 순간부터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무엇에 반대하는지, 무엇을 창조하려 하는지, 연합이 실패했을 때 무엇을 잃게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었다. 공동의 위협 인식도, 이를 타개할 실질적인 프로젝트도 없었으며, 참여하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기회비용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국제정치는 냉정하다. 이해관계 없는 연합은 유지되지 않고 비용 없는 연합은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믹타는 두 조건을 모두 결여한 채 출발했다.

 

ㅡ 외교행정의 산물에서 ‘진짜 연합’으로의 전환

 

믹타의 무능은 그것이 ‘외교정책’이라기보다 한국 ‘외교행정’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달리 별로 할 일도 없으니 이것으로 ‘면피’한다는 생각에 만든 조직이다. 목표도 헌장도 상설 사무국도 가용 예산도 없다. 공동 행동을 강제할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상태에서 매년 반복되는 정례 회의와 공허한 보도자료는 관료적 관행에 불과했다. “중견국 간 협력 강화”라는 속빈 수사로 국제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리라는 기대도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외무부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믹타가 “성공적인 중견국 협의체”로 소개되고 있다. 자기기만이다.

 

하지만 중견국 연대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폐기할 일은 아니다. 지금의 국제 환경은 ‘가짜 중견국 연합’이 아니라 ‘진짜 중견국 연합’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은 명확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주권 존중과 국제법 준수, 투명한 계약과 규칙의 회복이 그 출발점이다. 동시에 제국주의적 행패에 대한 집단적 억제, 군사적 침공과 경제적 강압에 대한 공동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중요한 요소는 ‘미국 없는 세계’에 대한 전략적 대비다. 이는 반미주의와는 궤를 달리한다. 미국은 여전히 핵심 국가지만 국내 정치적 이유나 전략적 우선순위 변화로 인해 언제나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견국 연합은 미국을 대체하는 세력이 아니라 미국의 후퇴 속에서도 규범 기반 질서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이 되어야 한다.

 

ㅡ 새로운 중견국 연합구상

 

연합의 이름은 중요치 않다. M10이든 M20이든 Core10이든 본질은 기능과 책임이다. 출발점 역시 현실적이어야 한다. 기존 믹타 국가들을 기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지와 역량을 갖춘 국가들만 참여해야 한다. 캐나다에 더해 프랑스와 독일과 네덜란드, 북유럽 일부 국가들, 그리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선택적 참여국들이 현실적인 후보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기준은 하나다. 규범을 지킬 준비와 그 대가를 지불할 정치적 의지다.

 

방법론 또한 상징과 실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차기 믹타 연례 외무장관 모임을 마지막 회의로 규정하고, 그 자리에서 믹타의 역할 종료와 새로운 중견국 연합의 출범을 동시에 선언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믹타의 실패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정치적 결단이다. 이후 사무국 설치와 헌장 채택, 최소한의 공동 기금과 집행 가능한 프로젝트 설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 단계에서부터 연합은 비로소 말이 아니라 행동의 단위가 될 것이다.

 

새로운 중견국 연합이 ‘말의 성찬’을 넘어 실재하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설계되어야 한다. WTO 체제의 부활을 위한 공동 노력, 특정 국가의 경제보복 완충용 공동금융 장치, 해양과 사이버 영역의 정보공유와 공동대응 체계, 기술 규범과 공급망 안정성에 관한 공동기준 등이 검토될 수 있다. 프로젝트는 제도와 예산을 통해 뒷받침되어야 하며 참여국들은 실패의 비용을 실제로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연합은 의미 있는 행위자가 된다.

 

모든 논의의 중심에 한국이 서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애매한 위치에 머물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안보 역량, 기술력, 산업 기반, 민주주의 경험을 동시에 갖춘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문제는 역량이 아니라 결단이다. 중견국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임을 질 때만 비로소 국제정치에서 실재하는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한국이 진짜 외교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지금 외무부는 해체하고 제대로 된 외교부를 만들면서 동시에 추진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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