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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오늘날 미국의 외교 전략은 전대미문의 행보는 아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 아래 펼쳐지는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의 행태 역시 이단아의 돌출행동이 아니다. 19세기 말 미국이 대륙을 넘어 제국으로 발돋움하던 시절의 ‘맥킨리 주의’가 21세기에 부활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종착지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윌리엄 맥킨리가 총칼로 세운 미국의 ‘황금 제국’을 지금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이 해체하고 있다. 우리는 제국의 황혼과 새로운 국제 질서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1897년 맥킨리는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그는 필리핀과 괌을 삼키며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비인도적이었으나 명확했다. ‘팽창하는 포식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50%의 고율 관세라는 성벽을 쌓고 영국 주도의 질서를 파괴하며 미국이라는 괴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때의 보호무역은 ‘성장을 위한 근육’이었다. 힘을 바탕으로 한 영토 확장과 높은 장벽을 세운 보호무역, 이것이 맥킨리 시대의 본질이었다.
작금의 트럼프는 제국의 잔해를 중고시장에 내놓고 구매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맥킨리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가 보여주는 베네수엘라 침공이나 그린란드 병합 위협과 같은 발상은 19세기 식 영토 확장이라기보다 몰락하는 제국의 수장이 동네를 휘저으며 푼돈을 갈취하는 ‘양아치 정치’에 다름이 아니다.
맥킨리가 제국을 세우기 위해 근력을 자랑하고 벽을 쌓았다면 트럼프는 무너지는 국가의 수리비를 동맹의 주머니에서 털어내기 위해 상호관세라는 터무니없는 흉기를 휘두르고 있다. 맥킨리는 팽창하는 제국의 ‘상승기’를 지휘했지만 트럼프는 쇠퇴하는 제국의 ‘하강기’에서 어떻게든 본전이라도 뽑아내려는 고물상 주인의 못된 심보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의 ‘마가’와 과거 부시 행정부를 장악했던 ‘네오콘’은 종종 혼동되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네오콘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시장경제로 대표되는 미국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물리적 개입을 불사하는 오만한 ‘이상주의적 제국주의’를 표방한다. 반면 마가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이기적이다. 세계 경찰의 지위는 명예가 아니라 짐이다. “미국이 왜 남의 나라를 지켜줘야 하는가?” 맥킨리가 미국의 위대함을 영토와 영향력 확대로 증명하려 했다면, 트럼프는 그 위대함을 착취와 강압의 일상화로 시현하려 한다.
트럼프의 통치 스타일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에 등장하는 리처드 3세의 광기를 빼닮았다.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비웃으며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왕좌에 오른 리처드 3세처럼 트럼프 역시 워싱턴의 낡은 프로토콜을 파괴하는 데서 권력의 동력을 얻는다. 이런 독단적 카리스마는 소외된 대중에게 일시적인 해방감을 줄지 모르나 결국 국제 사회의 규범을 무시한 독주는 필연적으로 사방에 적을 만들고 제국을 고립시킨다.
맥킨리의 시대는 화려한 제국주의의 이면에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섞여 있었다. 그 결과 맥킨리는 사회적 불평등에 분노한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제국의 팽창은 내부의 분열을 치료하지 못한다.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 우선’을 외치며 집권했다. 하지만 미국 내부의 갈등은 최고조로 올라 있다. 미니애폴리스 사태와 전국적인 시위는 미국 사회의 인종적, 계급적 균열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주류 사회와 기득권층은 트럼프를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배척하고 있다. 내부가 찢기고 있는 제국이다.
아울러 ‘미국 우선주의’는 동맹국들에게 모욕과 부담을 동시에 안기고 있다.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트럼프의 강압적 행동과 관세 위협에 맞서 강경한 대응을 천명하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동맹국들이 독자적 행보를 강화하는 것은 반발의 증거다. 인도와 브라질 같은 신흥 강대국들 역시 미국의 자의적인 관세 정책과 제재에 반발하며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트럼프의 고관세에도 작년 사상 최고치의 수출실적을 거두었다.
“파괴 중”(Under Destruction)이라는 제목으로 9일 공개된 ‘2026 뮌헨 안보회의’ 보고서가 세계를 ‘파괴의 정치’ 시대로 규정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후 국제 질서를 구축해 온 규범과 협력 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과거에 미국의 위압적인 요구에 굴복했던 중견국들이 이제 ‘결집’하고 있다. 유럽의 정상들이 중국과 인도를 찾고 있다. 이들은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 대신 다극화된 질서를 모색한다.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될수록 ‘미국 없는 세계’를 준비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제국의 힘이 빠지고 있다.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한미동맹을 상수로 두고 모든 전략을 짜왔다. 하지만 미국이 스스로 동맹의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하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약속을 뒤집을 수 있음을 보여준 이상 기존의 접근법은 위험하다. 이제 한미 동맹의 ‘재설계’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종속적 동맹’에서 탈피해 우리의 국익에 따라 동맹의 수위를 조절하고 협상하는 ‘능동적 주권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다.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외교적 다변화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복원함과 동시에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유럽 등 중견국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자강(自强)의 논리다. 경제와 안보 모든 면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보호막이 찢어질 경우에 대비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핵물질의 농축·재처리 능력의 확보도 중요하다. 셋째, 주권의 명확한 행사다. 동맹의 미명으로 강요되는 부당한 경제적, 군사적 요구에는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
맥킨리의 제국주의가 미국의 비상(飛翔)을 알렸다면 지금의 미국 우선주의는 ‘약탈’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생존을 구걸하는 약소국이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독보적인 문화 역량을 갖춘 당당한 주권 국가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동맹의 선의가 아니다. 변화를 읽는 통찰력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다. ‘진정한 독립’의 길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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