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을재(전 전교조부위원장)
등록일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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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국정화 반대' 연가투쟁…교육부 "참여교사 징계"(2015.11.20. 사진=연합뉴스)

 

 [교육의 자주성 보장]

교육의 자주성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까요? 들어보기 어려운 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31조에는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인 헌법에 어엿이 들어 있음에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가치입니다.

 

현실에서 뭉개지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러나, 교육의 자주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교육의 자주성은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자주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육 내용을 자주적으로 선택하고, 또 학습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자주성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대한민국의 교사는 아무런 자주성이 없었습니다. 자주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부족한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진보교육감이 그 같은 노력의 맨 앞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의 자주성 보장]

1. 박근혜 정권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편찬은 정부가 독점했습니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국정교과서였습니다. 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 투쟁이후 국정교과서 대신 정부가 검사해서 인정하는 교과서가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검인정 교과서라고 합니다. 이 같은 검인정 교과서는 교사들이 여럿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고 또 교과서 집필에도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교사의 자주성이 더 많이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검인정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려고 한 사건이 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건입니다. 교육 내용을 정권이 독점하려고 한 것입니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듯이 이승만 박정희 독재 찬양, 일제 침략 미화 등이었습니다. 교육의 자주성이 왜 중요한지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2. 국정교과서 체제보다 검인정 교과서 체제가 낫긴 하지만, 여전히 검인정 교과서의 주요 내용 골격을 교육부가 독점 결정하였다는 점에서 교육의 자주성이 온전히 보장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육부의 자주성이 아니라 교육의 자주성이 보장되려면 모든 교육 내용이 교사들에 의해 선택되고 구성되어야 합니다. 각급 학교의 교육 내용을 선택하고 구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위원회가 전국 단위, 시도 단위, 그리고 학교 단위로 각각 구성, 운영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교사들의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들의 대표들이 다수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교육의 자주성이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당연한 일이 지금까지 전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교육의 자주성이 없었습니다. 헌법 조항으로만 있었을 뿐입니다.

 

3. 교육의 자주성은커녕 말도 못할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교 교실의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고 장악하고 교육의 자주성을 완전히 유린하는 일을 교육부가 너무나 오랫동안 천연덕스럽게 벌이고 있었습니다. 교육부가 만든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이라는 법령이 그것입니다.


‘교과학습 발달상황에는 성취도(A~E), 석차등급,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을 과목 담당 교사가 기재하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지속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누가 기록을 참고하여 구체적 성장 모습을 기술하라’ 
‘수상경력은 학기당 1개만 대입에 반영하라’
‘학교 교육계획에 따른 봉사만 반영하고 개인 봉사활동 실적은 반영하지 마라’
‘자율동아리 활동은 기재하지 마라’
‘진로희망분야는 대입에 반영하지 마라’
‘독서활동은 책 제목과 저자만 기재하고, 상세 내용은 반영하지 마라’ 
‘글자 수는 행동특성은 500자, 진로활동은 700자로 제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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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별관에서 열린 '서울교육의 형평성과 자율성, 함께 여는 교육의 미래' 토론회에서
시민단체가 반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2025.11.11, 사진=뉴스1)

 

4. 교사들은 생활기록부가 왜 필요한지 또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교육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철학과 판단에 따라 기록하면 안 됩니다. 대학 입학 자료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만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야 합니다. 생활기록부의 평가 기술도 교육부가 정하는 글자 수에 맞추어야 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지적, 정서적, 신체적 발달을 위해 교육하면 안 됩니다. 학생들의 서열을 나누어 서열에 따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학생들을 감별하는 일에만 종사해야 합니다. 교육의 자주성이라고는 찾으려고 해야 찾을 수 없는 암울한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입니다.

 

5. 초중고등학교의 대학 입학 사무 대행을 중단해야 교육의 자주성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대학 입학은 입학자격고사와 학생 본인의 지원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성적 고득점자와 저득점자로 서열을 나누어 상품화하고 상품의 특성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그 등급을 나누는 반교육을 중단해야 합니다.

 

스카이 대학 등 일부 소위 명문 대학들의 학생 우선 선발을 돕기 위한 생활기록부 작성은 교육이 아니라 명백한 잡무입니다. 이 같은 잡무를 교사들에게 부당하게 지시하고 간섭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합니다. 초중고등학교는 학생들의 대학교 입학 사무를 대행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초중고등학교는 그 스스로 교육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공교육 기관이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부속 기관이 아닙니다.

 

교사들이 교육부가 요구, 지시하는 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을 따라야 할 정당한 이유가 없습니다. 교사들이 스스로 교육내용을 정할 수 있으며, 스스로 학습 결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입니다. 


진보교육감이라면 공교육을 왜곡하고, 학생들의 교육을 갉아먹는 생활기록부 작성 지침을 폐기해야 합니다. 교사들에게 불필요한 잡무를 부가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을 상품화하고 등급을 나누는 반교육적, 반인권적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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