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위안치(赵苑琪)/ 김정호 번역
등록일 : 202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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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 공격으로 파괴된 골레스탄궁 모습. 

 

2026년 3월 2일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테헤란 주재 기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헤란 대바자르 인근 지역을 공격하면서 그 여파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골레스탄 궁 건축군에도 미쳤다. 이란 고대사 연구자로서 나는 깊은 비통함을 느낀다. 이는 이란 문명의 상처일 뿐 아니라, 인류 공동유산에 대한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이다. 그리고 그 아픔의 무게는 골레스탄 궁의 역사·문화적 저변을 이해할 때 비로소 깊이 체감할 수 있다.

 

골레스탄 궁은 테헤란 도심에 자리하고, 번화한 테헤란 대바자르와 인접해 지리적 조건이 매우 뛰어나다.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홀로 우뚝 선 궁전이 아니라, 감상성과 기능성을 겸비한 복합 건축군이다. 궁전의 장엄함, 정원의 우아함, 정자와 누각의 정교함이 한데 어우러져, 높낮이와 층위가 풍부한 건축의 두루마리 같은 풍경을 이룬다.

 

골레스탄 궁의 역사적 맥락은 이란 근대의 3대 왕조를 관통한다. 전통 제국에서 현대 국가로의 전환을 살아 있는 형태로 증언하는 동시에, 페르시아 문명과 동서 문화 교류가 빚어낸 찬란한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 기원은 사파비 왕조(1501~1736) 타흐마스프 1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처음에는 테헤란의 역사적 요새 ‘라이 성’의 일부로서 군사 방어체계에 딸린 부속 건물에 불과해 궁전의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 잔드 왕조(1750~1794)로 들어서 카림 칸 잔드가 사파비 왕조를 무너뜨린 뒤 이란 통일을 추진하면서, 한때 테헤란을 통치 중심으로 삼아 이곳은 임시 거처로 개조돼 거주·행정 기능을 겸하게 됐지만, 규모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골레스탄 궁이 진정한 전성기를 맞은 것은 카자르 왕조(1794~1925)부터다. 1794년 왕조 창건자 아가 무함마드 칸이 수도를 테헤란으로 정하고, 이 건축군을 정식 왕궁으로 확정하면서 ‘골레스탄(정원)’이라 이름 붙였다. 이는 “정원 속에 궁이 있고, 궁 안에 정원이 깃든” 독특한 구도를 정확히 드러낸다. 궁전 정원은 페르시아 전통 조원(造园) 이념을 따르며, 대칭 배치와 물길·녹음을 통해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고, 건축의 웅장함과 함께 서로 빛을 주고받으면서 생기와 미감을 뽐낸다.

 

이후 나세르 앗딘 샤 통치기(1885년부터 재위 약 반세기, 이란 최초의 유럽 방문 군주)에는 유럽 문화와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으며 큰 변화를 맞았다.

 

왕조 말기에는 무자파르 앗딘 샤, 무함마드 알리 샤, 아흐마드 샤 등 세 군주를 거쳐 왕조가 붕괴할 때까지, 골레스탄 궁은 건축 구도 면에서 뚜렷한 변화는 없었으나 입헌혁명 및 이후의 중대 정치 사건들에 깊게 휘말렸다. 이란 근대사와 긴밀히 얽히며, 이란 민족의 역사 기억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가 됐다.

 

역대 군주의 지속적인 증축과 보수로 골레스탄 궁은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었으며, 대리석 왕좌 대전, 거울궁, 태양궁 등 여러 핵심 건물을 보유하게 됐다. 카자르 왕조의 권력 중추이자 왕실 생활의 핵심 공간이 된 것이다. 이 시기 골레스탄 궁은 군주의 거처이자 국정 운영, 궁정 의례가 이루어지는 장소였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 전통 건축 예술과 공예가 집대성된 공간이기도 했다. 궁내 거울 장식 공예, 석고 부조, 벽화는 정점에 달했고, 독자적인 카자르 건축 양식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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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비 왕조(1925~1979)에 들어서면서 기능은 크게 전환된다. 왕실의 일상 거처가 아니라, 국가 공식 의례를 열고 외국 정상과 귀빈을 접대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으며, 이란이 대외적으로 국가 문화와 이미지를 보여주는 창구가 됐다. 1967년 10월 27일 무함마드 레자 팔라비 황제와 파라흐 자흐라 왕후의 대관식도 이곳에서 열렸다. 성대한 의식과 궁전의 화려함이 서로 어우러지며, 골레스탄 궁은 팔라비 왕조 정통성의 상징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왕조가 바뀌어도 골레스탄 궁이 지닌 문화적 가치는 퇴색하지 않았다. 이는 이란 근대 이후의 정치 변동을 기록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의 예술적 심미와 사회상을 보존해 이란인에게 대체 불가능한 문화 상징이 됐다. 또한 자유와 다원 문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적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2013년 유네스코는 골레스탄 궁을 세계유산 목록에 공식 등재했다. 그 핵심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골레스탄 궁은 카자르 건축 양식의 가장 완전하고 전형적인 유산으로, 페르시아 전통 건축의 정수와 서구 건축 요소를 융합해 18~19세기 이란 사회의 문화적 전환을 보여준다. 둘째, 거울 장식 예술, 석고 부조, 벽화, 도자 장식 등은 페르시아 전통 공예의 기예와 미감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어 이란 근대 미술사·공예사 연구에 귀중한 실물 자료다. 셋째, 이란 근대 국가 형성의 증거로서 이란 민중의 집단 기억을 담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문명의 대화와 교류를 담는 중요한 매개체다.

 

이번 공격으로 골레스탄 궁 내부에서는 대리석 왕좌 대전과 거울궁의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그런데 이 두 건물은 골레스탄 궁의 역사·문화·예술 가치가 가장 농축된 핵심이기도 하다. 대리석 왕좌 대전의 사방 벽과 돔에는 복잡한 부조, 법랑, 거울 모자이크와 페르시아 전통의 기하학 격자창 장식이 있다. 궁내 격자창은 색유리를 이어 붙인 것으로, 햇빛이 비칠 때 벽면과 천장의 거울 장식과 서로 반짝이며 찬란한 시각 효과를 만든다. 벽화는 페르시아 역사 이야기, 궁정 생활, 자연경관을 주제로 하며 선이 섬세하고 색채가 화려해 카자르 시대 사회상과 심미 취향을 생생히 재현한다. 카자르 왕조 역대 군주의 대관식과 새해의 성대한 알현 의례도 모두 이곳에서 거행됐다.

 

골레스탄 궁전 내부 전경. 2025.5 사진(위)과 2026.3 파괴 후 모습.png.jpg
골레스탄 궁전 내부 전경. 2025.5 사진(위)과 2026.3 파괴 후의 모습.

 

이에 비해 거울궁은 더 정교하고 단아해 카자르 궁정 생활의 실제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내부는 극도로 세밀한 거울 장식 공예로 유명하며, 벽과 천장은 잘게 쪼갠 유리 거울 조각을 박아 복잡한 기하학 문양과 꽃무늬를 이룬다. 빛이 닿으면 마치 은하 속에 들어온 듯하다. 석고 부조는 선이 유려하고 층위가 풍부하며, 페르시아 신화와 식물 문양을 아우르는 주제로 페르시아 장인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다. 또한 이곳에는 고대 필사본, 도자기, 금은기 등 이란의 가장 귀중한 역사 유물 일부도 소장돼 있는데, 각각이 이란 문명의 두터운 역사를 짊어지고 있다.

 

이번 공격으로 발생한 충격파가 골레스탄 궁에 미치면서 대리석 왕좌 대전과 거울궁의 다량의 유리 장식이 깨져 떨어졌고, 석고 부조도 손상됐다. 이런 대체 불가능한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하며, 그 문화적 손실은 가늠하기 어렵다.

 

나는 거울궁의 찬란한 빛과 그림자 속에서 방문객들에게 그 뒤에 숨은 왕조 교체와 문명 이야기를 수없이 들려준 바 있고, 정원의 졸졸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페르시아 조원 예술의 철학적 함의를 풀어낸 바도 있다. 나는 골레스탄 궁의 가치는 이미 건축 자체를 넘어섰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이란 근대 역사의 “살아 있는 역사책”으로서 왕조의 흥망과 사회 변천을 기록한다. 페르시아 문명의 “예술 보물창고”로서 공예 전승과 심미의 연속을 담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인류의 공동 재산으로서, 서로 다른 문명이 상호 이해와 존중으로 이어지게 하는 다리다.

 

역사 연구의 관점에서 문화유산은 정권 교체나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 인류 집단 기억의 물질적 매개체다. 문화유산은 말없이 문명의 흐름, 국가의 구도, 시대의 정신을 기록하며,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붙들며 미래를 비추는 유일한 실물 근거가 된다. 골레스탄 궁이 피해를 입은 것은, 과거 바미안 석불이 파괴되고 이라크의 쐐기문자 점토판이 유실된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 문명의 비극이다. 이 사건들은 동기와 성격은 서로 다를지라도, 복제 불가능한 역사 기억의 훼손과 독특한 문명 형태의 파괴를 의미한다.

 

군사적 용도가 없고 전략적 가치도 없는 문화유산인 골레스탄 궁이 공격에 ‘부수적’으로 휩쓸려 손상된 것은 고의적 직접 파괴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전히 인류 공동의 문명적 최저선에 대한 도전이 된다. 문명의 진정한 뜻은 파괴가 아니라 계승에 있고, 역사의 계시는 대립이 아니라 포용과 공존에 있다. 골레스탄 궁의 상흔은 모든 역사 목격자 마음속의 공동 유감이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운다.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든, 이견이 어떻게 존재하든, 문화유산에 대한 경외심을 유지해야 하며 문명이 갈등의 희생양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골레스탄 궁의 거울 장식이 다시 빛을 되찾고, 손상된 부조가 정성껏 복원되며, 모든 역사 유산이 선하게 대우받기를 바란다. 문명의 최저선을 지키고 공동유산을 수호할 때에만, 인류는 역사의 긴 강 속에서 문명의 빛을 붙잡아 진정한 평화와 공생을 이룰 수 있다.  (저자 소속: 이란 테헤란대학교 역사학과)

 

2026-03-06 

출처:  환구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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