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민종덕(전 청계피복노동조합 위원장,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등록일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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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다리에 있는 전태일 열사  반신동상
사진 출처=  <내손안에 서울> 50주기 '전태일'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 5곳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은 전태일의 삶과 사상을 가장 깊이 있게 복원하고 정리한 저술이다.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을 통해 전태일의 사상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었다.


첫째, 인간 존엄성의 사상이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한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기업주나 지식인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휴식과 행복은 어떤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한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은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둘째, 노동자 스스로의 각성과 주체성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체념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남이 대신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노동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주체다.


셋째, 기존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거부다.
당시 사회는 돈과 권력, 출세와 현실적 이익을 능력과 성공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전태일은 이러한 가치관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보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에 눈감는 것이 현명한 삶이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옳은 일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바보라고 부르는 삶을 오히려 올바른 인간의 삶으로 받아들였다.


넷째, 사랑과 연대의 사상이다.
자신만 잘살기 위한 삶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고통받는 동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어린 여성 노동자와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향한 사랑은 전태일 사상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사랑은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현실을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섯째,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투쟁의 사상이다.
노동자의 고통은 몇몇 악덕 기업주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고, 노동행정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조차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하는 현실을 직시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은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와 권력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어야 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섯째,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이다.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을 집행해야 할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스스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진정과 호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집단적 행동이 필요하다. 전태일은 개인적인 선의와 희생을 넘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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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전태일 사상의 핵심은 단순히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기계나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이며, 노동자 스스로 인간다운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은 이러한 전태일의 삶과 사상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태일 평전』은 1983년 신군부의 탄압이 계속되던 시기에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으로 돌베개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당시에는 저자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그러나 전태일의 뜻을 실천하려는 전태일기념사업회와 청계피복노조를 비롯한 노동운동 단체, 민주운동 단체들은 이 책을 전태일의 삶과 정신을 이해하는 정통적인 저술로 받아들여 왔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전태일 평전』에 담긴 전태일 사상을 계승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사상을 대중적인 구호로 표현하기 위해 「전태일 사상」을 「전태일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태일은 책상 앞에서 사상을 연구한 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사상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전태일 사상」이라는 학술적인 표현보다는 「전태일 정신」이라는 실천적이고 대중적인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태일 정신」이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된 것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였다. 매년 11월 13일 전태일의 기일을 전후해 전노협과 민주노총 등 전국 단위 노동조합들이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면서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구호이자 지향점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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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13일 연세대학교 야외극장에서 열린 첫번째  전태일열사정신계승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자대회
출처= 노동과세계


이처럼 「전태일 정신」은 정통성과 역사성을 가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소중한 유산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태일재단은 이수호 이사장 시절부터 「전태일 정신」 대신 뜬금없이 「풀빵 정신」이라는 말을 들고나왔다.


도대체 무엇을 「풀빵 정신」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아마 전태일이 점심을 굶는 어린 시다들을 위해 자신의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밤늦게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집까지 걸어갔던 일을 본받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면서 나눔과 연대를 강조한다.


물론 전태일의 풀빵 나눔은 아름다운 일이다. 누구도 그 숭고한 사랑과 희생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제는 풀빵을 나누어 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전태일 정신의 전부인 것처럼 내세우는 데 있다.
전태일 사상의 발전 과정을 보자.


전태일은 가난과 차별,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뿐 아니라 동료 노동자와 어린 여공들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고통이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적 모순을 자각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알고 단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적인 선의와 호소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행동을 추구했다.
바로 조직과 투쟁이다.
전태일이 꿈꾸었던 세상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평등한 세상, 인간해방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풀빵 정신」은 이러한 전태일 사상의 발전 과정을 생략한 채 감상적인 연민과 도덕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 결과 구체적인 노동자의 권리와 자본의 책임은 뒷전으로 밀리고, 노동자가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본질적인 과제는 가려진다.


전태일이 보여준 사랑은 불쌍한 사람에게 돈이나 음식을 나누어 주는 개인적인 선행에 그치지 않는다. 고통의 원인을 함께 해결하고, 불의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사랑이다.
전태일의 사랑은 투쟁하는 사랑이었다.

감상적인 연민과 도덕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이른바 「풀빵 정신」은 결국 전태일을 '착한 전태일'이라는 이미지 속에 가두어 버릴 위험이 있다.


본질과 다르면서 겉모습만 비슷한 것을 우리는 흔히 '사이비(似而非)'라고 한다. 종교에서는 '이단(異端)'이라고 하고, 저잣거리에서는 '가짜', 속된 말로 '짜가'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왜 정통한 「전태일 정신」을 두고 듣보잡 「풀빵 정신」을 만들어 낸 것인가?
나는 그 배경에 전태일이라는 노동운동의 상징성을 독점하려는 일부 운동권 인사들의 권력 카르텔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태일의 이름과 역사적 성과를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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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에 막힌 ‘박근혜 행보’… 유족 반발로 재단 방문 무산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당시)이 2012년 8월 28일 서울 종로 청계천6가 전태일 동상 앞에 주저앉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헌화를 막고 있다.(사진)   같은 날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선생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재단 입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방문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처= 경향신문


드러난 몇 가지 사례를 짚어보자.


2012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를 전태일재단에 초청하려 했으나 무산된 사건, 2023년 10월 사소한 구실을 내세워 전태일 동상 철거를 시도한 사건, 그리고 2024년 3월 「전태일재단-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을 추진한 사건이 있다.


특히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을 둘러싸고 한석호의 책임을 묻던 당시 이사장을 절차도 무시한 채 강압적으로 내쫓은 일은 전태일재단의 운영과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도 있다.
지난 8월 19일 문화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정몽준(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의 뜻을 잇는 장학사업을 위해 사재 5억 원을 기부했다.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 열사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노사를 아우른 나눔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 열사의 이름을 딴'이라는 표현과 '노사를 아우른 나눔'이라는 표현이다.


자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정몽준이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의 이름을 내건 장학사업에 거액을 기부했다. 물론 장학금 기부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묻고 싶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근본적인 이해관계와 사회적 모순은 그대로 둔 채,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노사를 아우른 나눔'이 과연 전태일 정신의 계승인가?
이것이 바로 「풀빵 정신」이 추구하는 세상인가?


전태일의 노동운동적 상징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56년 동안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해 온 노동자와 민중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역사적 성과물이다.


이 소중한 역사적 자산을 특정 단체나 일부 인사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전태일재단은 지난해부터 11월 13일을 '전태일의 날'로 정하고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는 전태일재단의 전임자 자격으로 '전태일의 날 국가기념일 지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빠진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껴안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산화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근로기준법이 온전히 지켜지고 노동문제도 모두 해결되었으니, 전태일의 외침은 과거의 역사로만 남겨 두고 이름만 기념하자는 것인가?
전태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저절로 보장된단 말인가?
기념일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전태일이 외쳤던 요구를 지금 이 땅에서 실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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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한국노총 사회적 해고 공대위와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등 노동·시민단체들은 2026년10월 27일 오후 2시 국회 정문 앞에서 ‘노동인권 사각지대 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법상 일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권 사각지대를 지적하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출처= 찐뉴스 


 

둘째, 개인을 우상화하고 전태일의 이름을 특정 세력의 전유물로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을 기념하는 일과 전태일을 우상화하는 일은 다르다. 전태일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명예와 영향력을 높이려는 행위, 이른바 매명(賣名)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셋째,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적 성과인 노동절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절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해 쟁취한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전태일 정신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절의 역사적 의미와 노동자들의 공동투쟁 정신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이미 매년 전태일 기일을 전후해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들이 해마다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전국적인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기존의 노동운동 역사와 실천을 존중하지 않은 채 별도의 국가기념일을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일인가?


다섯째, 국가기념일 지정이 과연 전태일을 기리는 올바른 방법인지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기념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굳이 국가기념일이라는 형식으로 전태일을 기려야 하는지, 그것이 전태일의 뜻을 계승하는 데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전태일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념일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태일이 꿈꾸었던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전태일재단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전태일 정신」의 본질에 충실하라.
56년 동안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싸워 온 노동운동의 역사와 성과를 존중하라. 그 정통성을 이어가라.
전태일의 이름을 내세워 유명하고 유력한 인사들과 교류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그것이 곧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도 말라.
권력이 주는 '한자리', 조선일보가 지면을 내주는 '칼럼'이 자신의 영향력이고 전태일 정신의 확산이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풀빵 정신」은 이미 수많은 자선단체가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맡겨도 좋다.
전태일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노동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만들어 내는 사회구조와 맞서 싸운 투쟁가였다.
전태일이 꿈꾸었던 것은 풀빵을 나누어 먹는 세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 인간해방의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이 실현되는 날, 그날을 진정한 「전태일의 날」로 지정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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