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철학
  • : 제2장 세계의 물질성과 인간의 실천 활동
김정호 (울산함성 편집위원)
등록일 : 20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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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기본 임무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본질과 인간의 존재 방식을 탐구하고 자연, 사회, 인류가 어떤 기초 위에서 통일되어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철학적 세계관의 기초이다.

 

관념론이 세계의 통일성을 정신성에 귀결시키는 것과는 달리, 유물론은 세계의 통일성이 세계의 물질성에 있다고 본다. 유물론의 기본 전제는 물질이 우리의 의식 밖에 존재하며 우리의 의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 유물론이 "사물, 현실, 감성"을 단지 객체나 직관의 형식에서만 이해했던 것과는 달리,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것들을 인간의 감성적 활동, 즉 실천으로 이해한다. 구 유물론의 주요 결함은 실천 활동과 그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

 

인간의 실천 활동은 인간과 세계의 모든 관계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물질적 활동을 구성하며,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객관적 존재를 구성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이해하는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은 인간의 실천 활동을 포함한 물질적 통일성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이전의 모든 철학보다 뛰어난 점은 세계의 물질성과 인간의 능동적인 실천 활동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 세계관의 심오한 변혁이다.

 

ㅡ  마르크스주의의 물질관 및 그 현대적 의의

 

물질 개념은 인류 사상사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서로 다른 철학 체계에서 각기 다른 지위와 해석이 그것에 부여되었다. 철학과 자연과학에서 물질에 대한 이해와 정의는 서로 다르다.

 

독일 철학자 슈타이거뮐러는 <현대 철학의 주류>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20세기에 한편으로 유물론 철학(물질을 유일한 진정한 실재로 보는)이 세계 많은 국가에서 공식적인 세계관의 구성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철학에서도, 예를 들어 이른바 육체와 정신을 논하는 영역에서도 지배적인 위치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바로 이 물질 개념이야말로 본 세기 과학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우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간주된다."

 

물질 개념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20세기에 이르러 과학 혁명의 심오한 발전과 사회 변동의 격렬함으로 인해서 '물질'은 이전보다도 더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과학 혁명은 물질의 근본적 특징은 객관적 실재(實在, reality)성임을 더욱 보여준다.

 

저명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기술에 따르면, "불확정성 원리"는 미시 입자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 입자가 거시적 물체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할 뿐이다.  이렇듯 "객관적 실재"에 관한 연구는 20세기 과학과 철학에서 계속해서 중시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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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1901~1976)

 

객관론과 주관론, 실재론과 반(反)실재론, 환원론과 반환원론을 둘러싼 논쟁은 궁극적으로 "객관적 실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객관적 실재"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심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의 물질관을 현대 과학과 철학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주제와 연결시켰으며, 마르크스주의 물질관의 현대적 의의를 부각시켰다.

 

마르크스주의의 물질관은 레닌의 ‘물질’에 관한 고전적 정의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질은 객관적 실재를 표시하는 철학적 범주이다. 이러한 객관적 실재는 인간이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며, 우리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고,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 촬영, 반영된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물질 개념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인식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는다." (위의 글)

 

이 물질에 관한 정의(定義)의 기본 사상은 물질의 근본적 특징이 객관적 실재성이며, 물질은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의 공통적 본질에 대한 추상이라는 것이다.

 

엥겔스가 <반뒤링론>에서 말한 것처럼 "물질은 다양한 물질들의 총합에 불과하며, 이 개념은 이 총합으로부터 추상된 것이다." 이는 물질이 각종 구체적 실물의 공통적 특징이며, 물질 범주는 각종 구체적 실물에서 추상적으로 개괄해 낸 보편적 철학 범주임을 의미한다.

 

객관적 실재로서, 물질은 감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자연 사물뿐만 아니라, 감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의 감성적 활동, 즉 실천 활동도 포함한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논할 때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인류의 실천은 현상적 의미뿐만 아니라 객관적 실재의 의미도 지닌다."

 

레닌은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진리의 기준으로서, 또한 사물과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과의 연결의 실제적 확정자로서, 인간의 모든 실천을 사물의 완전한 '정의'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 (위의 글)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물질 범주는 객관적 실재의 표지로서 인류의 실천 활동을 포함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물질 범주 자체가 유물론적 자연관과 역사관의 통일을 구현하고 있다.

 

ㅡ 물질 개념의 역사적 발전

 

물질 범주는 유물론적 세계관의 초석이다. 물질에 대한 이해는 유물론 자체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왔다.

 

고대 유물론은 철학적 물질관 발전의 첫 단계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세계의 ‘본원’, ‘기질’, ‘통일성’ 문제에서 물질 개념을 도출했다. 그들은 물, 불, ‘원기(元氣)’, ‘원자’ 등의 ‘원초적 물질’이 세계의 근원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객관 세계의 근본을 탐구하고 세계의 물질성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추측에 불과했으며, 만물을 특정 물질 형태로 환원시키는 단순화한 접근법이었다.

 

근대 유물론은 철학적 물질관 발전의 두 번째 단계이다. 근대 유물론자들은 원자를 가장 작은 물질 단위로 보고, 원자의 속성이 모든 물질 형태의 불변적 특성이라고 간주했다. 이들은 물질을 원자로 귀결시켜 원자가 세계의 근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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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이렇듯 근대 유물론은 자연과학을 토대로 세계의 물질성을 설명함으로써 유물론적 물질관을 한층 발전시켰다. 그러나 당시 과학 발전의 한계와 변증법적 사고의 부재로 인해서 다음과 같이 중대한 결함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첫째, 특수와 일반, 개별성과 공통성의 변증법적 통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 특정 물질 층차(원자)를 물질 일반으로 오인하고, 원자의 개별적 특성을 물질의 보편적 특성으로 잘못 이해했다.
셋째, 특정 역사적 조건에서의 물질 구조에 관한 자연과학 이론과 철학적 물질 범주를 혼동했다.
넷째, 인류 사회의 물질성을 파악하지 못함으로 인해 자연계와 인류 사회의 물질적 통일성을 단절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역사관에서 관념론에 빠졌다.

 

ㅡ 변증법적 유물론의 물질관

 

변증법적 유물론은 철학적 물질관 발전의 세 번째 역사 단계를 대표한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이전 유물론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19세기 중반 이후 자연과학의 새로운 성과와 인류 실천의 경험을 종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물질관을  수립했다. 이로써 철학적 물질관은 현대 유물론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물질'은 단순히 “모든 사물의 기초”이거나 “성질의 버팀목(支撑者)”이 아니며, 그것은 인간 의식이 반영하는 모든 현상, 사물, 과정으로서 물질세계의 다양성에 대한 최고 수준의 철학적 개괄이다.  이렇듯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객관적 실재성이 모든 물질의 공통적 특성임을 지적함으로써, 철학적 물질 범주와 자연과학적 물질 구조 이론의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들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유물론의 한계를 극복했다.

 

물질의 어떤 구체적 형태와 구조는 물질의 개별성(個別性)에 속하며, 이는 가변적이며 상대적이다. 그러나 모든 구체적 형태와 다양한 구조의 물질은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는 공통성을 지닌다. 이는 불변하고 절대적이다. 물질의 형태, 속성, 구조가 아무리 특수하고 복잡하며 다양하게 변화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객관적 실재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유지한다.

 

개별성에서 보편성을, 상대적인 것에서 절대적인 것을,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파악하는 이러한 접근법은 바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물질 개념이 구현하는 유물변증법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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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본체(本體)론과 인식론의 통일

 

물질 개념은 본체론적 범주에 속하는데, 모든 인식론은 특정 본체론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유물론의 초석인 물질 개념은 유물론 철학의 인식론적 기반을 형성한다.

 

근대 유물론은 감각론적, 경험론적 유물론으로서 물질을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 물질의 감각 가능성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그러나 주체의 내적 상태인 감각 경험을 통해 객관적 실재인 물질을 규정하는 방식은 논리적으로 '불가지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로크(John Locke)와 라메트리의 사상에서 이러한 불가지론적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구 유물론에서는 본체론과 인식론이 종종 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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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 (1632~1704)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인류의 실천을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고, 그것을 물질 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불가지론적 경향을 극복하고 본체론과 인식론의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실천은 인간의 의식적 활동이면서도 객관적 실재이기 때문에, 주체와 객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주체가 내적 상태를 초월해 객관적 실재에 도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 사고의 객관적 진리성을 증명한다. 이처럼 객관적 실재성과 능동성을 겸비한 실천을 기반으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반영론을 능동적 반영론의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ㅡ 자연관과 역사관의 통일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물질 개념은 자연관과 역사관의 통일을 구현함으로써 철저한 유물론의 출발점을 형성한다.

 

구 유물론은 자연관에서만 유물론적이었고, 역사관에서는 관념주의로 회귀했기에 자연관과 역사관이 분리되거나 심지어는 대립했다. 구 유물론은 "물질적 자연"만을 인정하고, 자연 사물을 인간 정신과는 독립된 객관적 존재로 이해했다. 그러나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는 인간 실천 활동의 객관적 실재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객관성 원칙을 적용할 수 없었으며, 결국 역사 과정을 주관적 존재로 해석하여 "정신적 역사"라는 관념에 도달했다. 이로써 "물질적 자연"과 "정신적 역사"가 대립하는 이분법이 생겨났으며, 이 때문에 구 유물론은 "반쪽짜리" 유물론에 그쳤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인류 ‘실천’의 객관적 실재성을 규명하고 이를 물질 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객관성 원칙을 역사 영역까지 확장하여 자연 과정과 역사 과정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유물론적 원리를 정립했다. 이로써 유물론적 자연관과 역사관의 통일을 실현하였으며, 유물론을 철저하고 완전한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인류의 실천을 객관적 활동,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는지 여부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관념론은 진정한 현실적 감성적 활동 자체를 알지 못하였으며, 구 유물론도 실천의 객관적 실재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역사관에서 관념론에 빠졌다. 이는 인류의 실천을 객관적 실재로 인식하고 물질 개념에 포함시키는 것이 역사 과정의 유물론적 설명과 철학 전체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보여준다.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자연과학 영역에서 획기적인 발견이 있을 때마다, 유물론도 필연적으로 그 형식을 바꾸어야 했다. 그리고 역사 또한 유물론적 해석을 얻게 된 이후부터, 여기서도 새로운 발전의 길이 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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