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인사와 주요 단체 대표가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에 모여 원탁회의를 구성하고 20대 대선에 대응하기 위한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촉구하고 있다(2021.12.23.).png.jpg

 

앞서 2026년 지방선거를 맞이하는 진보진영의 선거 기조와 핵심 임무에 대해 살펴보았다. 망국적인 한미 관세협정의 폐기, 윤석열 쿠데타 세력의 완전한 청산, 반노동자적 노동개혁의 저지, 양당 독점의 선거법 철폐 그리고 총체적 사회 대개혁의 비전 제시까지, 진보진영이 이번 선거에서 짊어져야 할 과제는 실로 막중하다. 그러나 이 모든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이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하나의 절대적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보진영의 대단결’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 정치의 지형은 암울하기가 짝이 없다. 이재명 정권의 무능과 실정이 한계에 부딪히고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인데, 지금 이대로라면 민주당 정권에 실망한 민심의 분노는 권토중래를 꿈꾸며 버티는 ‘윤석열 어게인’ 세력 즉 수구보수세력에게 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같은 끔찍한 퇴행의 가능성은 진보진영 스스로가 사분오열된 채, 대중의 눈에 전혀 ‘대안 세력’으로 비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약한 진보의 목소리는 분열의 장벽에 막히어 대중에게 거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근래 들어 선거 때마다 ‘진보 대단결’을 거론하는 것이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또다시 ‘대단결’을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진보진영에게 남겨진 유일한 생존의 길이기 때문이다.

 

1.  분열의 병: 패권주의와 의회주의라는 악성 종양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진보 대단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 그 책임은 특정 세력에게만 있지 않고 좌우 세력 모두에게 있다. 예컨대 우편향은 민주당과의 협력에 연연해하며, 좌편향은 대중과 괴리된 채 원칙의 순수성만을 고집한다.


여기서 우편향 세력은 민주당과의 협력에 연연해하며, 그들의 시혜에 기대어 의석 몇 석 획득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진보당을 지칭한다.  진보당은 202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2석을 포함해 총 3석의 의석을 확보하였으나,  이마저도 민주당과의 선거 협력 덕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보당 지도부는 민주당과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이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당에 종속되어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보당은 얼마 전 정의당이 잘 나가던 시절 범했던 오류를 그대로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 무렵 정의당은 원내 제3당으로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원내 교섭단체까지 넘보던 전성기가 있었다. 그러나 정의당은 그 시기 민주당과의 협력에 치중하면서 독자적 정체성을 상실했고, 진보 진영 내에서도 "민주당의 들러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정의당은 2024년 총선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참패를 당하며 원외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이는 민주당 의존 노선의 파산을 의미한다.


정의당은 당시 진보대연합을 경시하면서 자신을 제 진보세력의 대부 자리에 위치시키려 하는 분파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현재 진보당 역시 다른 진보 정당들과의 연대보다는 민주당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며, 자신이 '제1 진보정당'으로 부상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전체 진보 진영의 역량 강화보다는 자기 조직의 의석 확대에 집착하는 협소한 조직 이기주의다.


이들과 달리 노동당의 문제는 이론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실천적 무력함으로 귀결된다는 점에 있다. 거리에서 아무리 급진적 구호를 외쳐도, 그것이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조직적 역량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2024년 총선에서 0.16% 득표율로 노동당은 의석 확보에 실패했는데, 이는 그들의 노선이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듯 서로 다른 모습에는 공통된 뿌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회주의적 노선’이며 여기서 ‘패권주의’라는 악성 종양이 자란다. 우리는 이 병의 진행 과정과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과거 민주노동당의 실패 사례를 통해 똑똑히 목격한 바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원내 10석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민주노동당은 한때 ‘집권’까지 가능하다는 장밋빛 기대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바로 그 성공이 비극의 씨앗이 되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제1야당을 거쳐 마침내 다수당이 되어 사회를 개혁한다는 의회주의에 빠졌다. 이 전략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당력을 ‘선거’에 집중했으며, 당의 무게 중심은 자연스럽게 의회 활동과 ‘의원단’으로 옮겨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국회와 지방의회의 의석, 그리고 당직이라는 한정된 ‘감투’를 놓고 각 정파는 자파 소속 인사를 한 명이라도 더 당선시키기 위해 치열한 ‘내부 투쟁’을 벌였다. 결국 ‘의회주의’야말로 패권주의를 낳은 일차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 의회주의 노선에 있어서는 NL(자주파)과 PD(평등파) 양대 파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다. 겉으로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노선 차이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양쪽 모두 자파가 의석과 당직을 한 자리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목표와 방식에 있어 큰 틀에서 일치했기에, 그들의 싸움은 대중의 눈에는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추어졌다. 결국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가 패권주의를 낳았다. 


우리는 이렇게 한번 가정해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만약 대중투쟁과 현장 조직의 발전에 복무하는 것을 당 활동의 목표로 삼았다면, 참여 정파들이 그토록 당직과 공직에 연연해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석수가 많으면 물론 좋긴 하지만, 그것은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대적인 필요 조건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의 정치적인 각성이며, 그 물질화된 표현인 '조직'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전농 부경연맹은 2023년 10월 10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진보정치 대단결을 위한 농민-노동자 공동 정치선언',.png.jpg

 

2. 의회주의를 넘어 현장으로, 노동자계급 대단결에 복무하자

 

진보정당들이 이 고질적인 분열의 역사를 끝내고 진정한 대단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회주의 노선이라는 낡은 옷을 과감히 벗고 진정으로 ‘대중운동과 현장에 복무한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선거 참여를 앞두고 ‘의회주의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대하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다.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는 의회에 몇 명의 의원을 보내는 것에 있지 않으며, 의회는 투쟁의 공간 중 하나일 뿐 결코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장에 복무’하는 것이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지금 시기 한국 노동자계급의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요구에 답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계급을 사분오열시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하청 노동자 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경험은 이 문제에 있어 의회주의 노선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2005년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몸을 던져 농성했지만, 원내 소수당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결국 실패의 쓴맛을 맛보았다. 언제 달성될지 모르는 원내 다수당에 대한 꿈을 꾸기에는 우리 주변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은 너무나 절박하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단 하나, 노동자들이 국회나 사법부 판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직된 힘으로 비정규직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으로 분열된 대오를 하나로 묶는 계급적 대단결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예컨대 동일한 현대모비스 노동자들이 금속노조라는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자회사)으로 분할되어 서로 교류조차 없다. 상급 조직인 금속노조 본조조차 이들의 공동교섭이나 공동투쟁을 조직하기는커녕, 자본이 만들어 놓은 분리 체계를 사실상 인정하고 그 위에 안주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진보정당의 새로운 사명이 있다. 진보정당은  단사주의를 넘어 노동해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지향할 수 있는 정치조직이기에, 당원들에게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체득시키고 이를 현장에서 실천하도록 만들 수 있다. 제2의 정치세력화는 바로 이 분열된 노동자들을 계급적으로 단결시키는 ‘계기’를 제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현장의 발전은 곧 진보정당 운동의 비옥한 토양이 되어 보답한다. 결국 진보정당 스스로도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 발전 간의 역동적인 변증법이다.

 

',민중의 간절한 바람은 진보후보 단일화', 촉구. 왼쪽부터 장유진 진보대학생넷 대표, 김식 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이 기자회견을 낭독하고 있다. (2021.12.23.) 사진.png

 

3. 대단결의 로드맵: 제2의 정치세력화를 향하여

 

진보정당의 대단결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의회주의 극복과 현장 복무’라는 원칙에 기초하여 앞서 제시한 선거 강령을 깃발로 2026 지방선거에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첫째,  2026년 지방선거를 ‘진보 대연합’의 이름으로 돌파하도록 한다. 

 

- 단결된 진보진영은 ‘망국적 한미 관세협정 폐기’를 제1의 구호로 내걸고, 이재명 정부의 굴종 외교와 민주당-재벌-수구세력으로 이어지는 매국 카르텔의 실체를 폭로한다.


- ‘윤석열 쿠데타 세력 청산’과 ‘양당 독점의 선거법 철폐’를 결합시켜, 민주당의 위선과 기득권적 본질을 공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대안은 진보세력에게 있음을 알린다.


- 무엇보다 ‘노동개혁 배신’을 규탄하고, 선거운동 과정 자체가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노동자 간의 연대를 조직하고 계급적 대단결의 불씨를 지피는 과정이 되도록  한다.

 

둘째, 선거연합을 넘어서 ‘단일한 진보정당’ 건설로 나아가는 장정에 착수한다.

 

지방선거는 끝이 아니며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선거 과정에서 확인된 대중투쟁의 동력과 지지를 바탕으로, 흩어진 진보정당과 제 세력을 하나의 ‘단일 대오’로 묶어 세워야 한다. 재벌 공기업화, 국가보안법 철폐 등 근본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양당 기득권 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알려야 한다.

 

이러한 원칙에 합의하는 세력끼리 먼저 선거연합을 구성하고, 정치 일정을 함께 해 나간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등이 연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는 고무적인 소식이지만, 단순히 선거 때만 일회적으로 연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선거연합은 지속적인 정치연합으로 발전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단일한 진보정당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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