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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몫
지방선거 날짜가 다가오자 현 울산 동구청장인 김종훈(진보당)씨가 지난 1월 6일 울산시장 선거에 나서겠다는 출사표를 냈다. 이어서 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인 이장우씨도 기자회견을 갖고 동구청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울산시장이든 동구청장이든, 일개 자치단체장이 지역의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거대 재벌 대기업을 상대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예컨대 재벌의 고용 정책을 바꾸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며, 하청 단가를 인상시키는 일 등은 자치단체장의 권한 밖에 있으며, 노동·이민·공정거래 집행권은 모두 중앙정부 소관이다.
그렇다면 울산지역의 진보정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에서 천명했던 명제는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과업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즉, 재벌을 움직이는 힘은 행정력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에서 나온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의 자치단체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노동자들의 단결에 앞장서고 복무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만나고, 정보를 얻고, 연대의 규칙을 만들며, 협상력을 키우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ㅡ 이것이야말로 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역할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단결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열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재벌에 대한 전면적 폭로이다. 그를 통해서 재벌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벌이야말로 한국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이자, 또한 원하청 문제를 낳는 원흉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간의 대단결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 역시 재벌이다. 재벌들은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시키고, 원청과 하청을 차별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여기서, 한미 간의 굴욕적인 관세협정과 연초부터 불기 시작한 ‘AI 도입’ 논쟁은 재벌의 매국적 본질을 폭로하고 노동자들의 각성을 촉구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
울산은 이러한 재벌에 대한 전면적 폭로를 조직할 수 있는 최적의 거점이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기업들이 밀집한 울산에서, 미국에는 대규모 투자와 정규직 고용을 약속하면서도 정작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양산에 열을 올리는 이율배반을 전면적으로 폭로해야 한다.
2. ‘AI 도입’ 논쟁과 ‘마스가’ 투자
(1) ‘AI 도입’ 논쟁
최근 노동 현장을 관통하는 뜨거운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에 관한 것이다. 연초에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AI 도입’ 발언에서 촉발된 이 논쟁은, 이후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자본 측의 입장을 거들면서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현대차지부의 원래 의도는 AI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 과정에서부터 ‘협상과 교섭’을 하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지만, 보수언론은 ‘AI 도입을 가로막는 강성 노조의 몽니’라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대중에게 왜곡하여 전달했다.
어쨌거나 이 논쟁의 진원지는 현대자동차이며, 그룹 총수인 정의선이 직접 언급한 사안이기에, 노동자들 특히 대공장 정규직들의 광범위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AI 기술의 발전은 대부분의 노동자를 위협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간 그들은 ‘노동 귀족’이라는 비아냥 속에서 억대 연봉으로 대표되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대우를 보장받아 왔는데, AI를 통한 스마트 팩토리의 도입은 분명 이들의 일자리를 정면으로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이 이 시점에 특별히 'AI 도입'을 거론한 이유 역시 단순히 기술 혁신을 선도하겠다는 의미를 넘어서, 고비용 구조의 핵심으로 지목되어 온 ‘억대 연봉의 정규직 노동자’를 손보겠다는 선전포고라는 것이 현장의 해석이다.
이러한 분석이 단순히 추측만이 아닌 것이, 실제로 지난해 말 단행된 현대차그룹의 정기인사에서는 전통적인 '노무 라인'의 약세가 뚜렷했던 반면, 공정 최적화와 AI 기술을 앞세운 기술 관료들이 전면에 배치되었다. 이는 사람을 통한 관리보다 '기술을 통한 통제'에 방점을 찍겠다는 경영진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 그간 안정적인 물량 생산에 주안점을 두고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통해 유지해 온 ‘산업 평화’ 위주의 노무관리 노선이 그 막을 내리고, 이제부터는 좀 더 노골적으로 비용 절감과 효율을 우선으로 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앞서 정의선 회장의 ‘AI 관련’ 발언과 그에 앞선 내부 조직 개편은 이러한 점에서 정확히 맥이 닿는다. 현대차 재벌의 입장에서도 전기차, 자율주행, AI 로봇 도입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기술 경쟁의 흐름에서 더 이상 뒤처질 수 없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을 수 있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인 테슬라는 물론이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BYD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 그리고 최근 들어 이들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기 시작한 폭스바겐 등 독일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생산방식의 근본적인 혁신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현대차 경영진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부터 대공장 정규직 역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며,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는 의미일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한국 정부와 재벌들에게 약속한 ‘26만 개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이러한 계획에 뒷힘을 제공했다. 26만 개의 최첨단 GPU는 단순히 컴퓨터 부품 몇 개가 늘어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는 AI 공장을 돌리고,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시켜 인간의 업무를 대체할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는 막강한 물리적 토대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종합하자면, 이제 재벌의 칼날은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를 넘어서 드디어 대공장 정규직의 심장부를 겨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거대한 위기는 노동자계급에게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간 비정규직과 부품사 하청 노동자들만 외롭게 외쳐왔던 원청, 즉 ‘재벌’ 과의 투쟁 대열에 이제는 대공장 정규직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진보정당 후보가 전면적인 반재벌 폭로전을 벌인 다면, AI 도입과 구조조정이라는 재벌의 칼날이 더 이상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안정적이었던 대공장 정규직까지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 이는 과거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 있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재벌'이라는 공동의 적을 분명하게 인식토록 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공동의 위기감은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며, 고용 형태의 벽을 뛰어넘는 노동자 대단결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2) ‘마스가’ 투자
앞서 AI 도입 논란이 대공장 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고 한다면, 최근 한국 조선 재벌들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참여 열풍은 그들의 위선적인 민낯과 매국적 행태를 폭로함으로써 반재벌 투쟁의 새로운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에는 정규직 고용과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도, 정작 자신들 성장의 발판인 모국 대한민국을 저임금 비정규직의 천지로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중적 행태는 한국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⓵ 한국 조선업의 무덤이 될 ‘마스가(MASGA)’ 투자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조선업을 재건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야심 찬 계획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무너져가는 미국 패권을 지키려는 노쇠한 제국주의의 마지막 발악에 불과하다. 미 해군이 계획한 잠수함 건조 일정조차 맞추지 못하고, 최신 항공모함의 핵심 기술(전자기 캐터펄트)이 잦은 고장을 일으켜 구식 증기식으로의 회귀를 검토할 만큼 미국 조선업과 군사기술의 몰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의 조선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여 자국 조선업을 재건하려는, 전형적인 종속국 수탈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재벌들은 이 마스가 프로젝트를 ‘기회의 땅’이라 선전하지만, 이는 스스로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격이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조선업의 자멸을 초래할 명백한 독이 든 성배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핵심 기술 유출과 경쟁력 상실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한화, HD현대, 삼성 등 재벌들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핵심 기술과 숙련 인력의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수십 년간 피와 땀으로 축적된 현장의 기술력과 숙련 노동력에 기반한다. 미국 현지 조선소를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선박 설계도, 생산 관리 시스템, LNG선 화물창 같은 핵심 기술은 물론, 용접, 도장, 조립 등 고도의 숙련 기술을 현지 인력에게 전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술 유출을 막을 방법이 원천적으로 없다는 뜻이다. 미국이 한국의 기술을 습득하여 자국 조선업이 자립하는 순간, 한국 기업을 배제할 것임은 명백하다. 이는 과거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지배했던 일본이 미국의 압력으로 기술 유출을 어쩔수 없이 허용하고 시장을 개방한 뒤 급격히 쇠퇴했던 ‘미일 반도체 협정’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이다.
둘째, 국내 투자 감소와 산업 공동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재벌들이 막대한 자본을 미국에 쏟아붓는 동안, 울산을 비롯한 국내 조선소에 대한 투자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설비 노후화, 기술 개발 지연, 인력 양성 중단이 현실화되면서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재벌들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장기적으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울산 지역 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 노동자 전체에게 전가될 운명이다.
⓶ 이중 잣대: 미국엔 ‘정규직’, 한국엔 ‘비정규직’
‘마스가’ 프로젝트의 가장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지점은 바로 고용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재벌들은 미국 현지 조선소에 투자하면서 ‘정규직 중심’의 안정된 고용을 약속 하고 있다. 한화가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물론, HD현대가 추진하는 신규 조선소 계획에서도 정규직 중심의 고용 구조는 핵심 홍보 전략이다.
이것은 그들이 갑자기 ‘노동 존중’ 기업이 되어서가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국제철강노조(USW), 국제기계항공우주노조(IAM) 등 강력한 산별노조가 버티고 있는데, 이들은 법과 단체협약을 통해 기업의 무분별한 하청 및 비정규직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처럼 저임금 비정규직을 무한정 활용하여 이윤을 뽑아내는 ‘초과 착취’ 모델은 미국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 노동법과 노조의 힘 앞에서 한국 재벌들이 순한 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똑같은 재벌들이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의 경우, 2000년대 초반 70%를 넘었던 정규직 비율은 현재 40%대까지 추락했다. 정규직 신규 채용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그 빈자리는 저임금 하청·재하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로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 용접, 도장 등 핵심 공정조차 위험의 외주화로 내몰리고 있으며, 재벌의 단가 후려치기 속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임금체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은 중대재해를 일상화한다. 안전교육도, 숙련도도 부족한 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이 위험공정에 투입되면서 조선소는 죽음의 공장으로 변하고 있다. 재벌들은 안전 투자를 회피하고, 사고가 터지면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을 뿐이다.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면서, 안정적인 소득과 소비가 위축되고 울산 동구의 지역경제는 뿌리부터 붕괴하고 있다.
"미국엔 정규직, 울산엔 비정규직"—이 구호는 재벌의 배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벌어들인 이윤으로 미국에 투자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정작 한국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며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한국 노동자들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며, 2026년 지방선거에서 한국 진보진영은 바로 이 모순을 전면적으로 폭로하고, 울산과 전국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하여 재벌의 매국적 행태를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3. 지역 연대조직 건설에 복무하는 지방선거
2026 지방선거의 전략적 목표는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내국인-이주노동자가 함께하는 대단결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선거는 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선거 과정 자체가 이러한 대단결을 이루는 과정이어야 한다.
진보진영의 후보는 ‘내가 무엇을 해결해주겠다’는 식의 영웅주의적 공약을 남발하는 대신, 노동자들의 단결에 앞장서고 그 투쟁에 철저히 복무하겠다는 약속을 모든 공약의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시장이나 구청장이 가진 제한된 행정력만으로 수십 년간 굳어진 착취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은 공염불에 그칠 위험이 크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동해방 사업은 노동자 스스로의 몫”이라는 낡지만 준엄한 가르침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진정한 변화는 위로부터의 시혜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끈질긴 투쟁과 조직된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후보는 행정가 이전에 ‘조직가(Organizer)’가 되어야 하며, 시청과 구청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연대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진지(陣地)’이자 ‘병참기지’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지역 연대조직이 필요할까? 현재의 민주노총 체계는 '지역 연대'라는 중요한 고리가 취약점으로 남아 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독자적인 결정권을 가진 집행기구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단순한 '지역 집행단위'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예산, 인력, 권한 등에서 많은 제약이 따르며 독자 사업능력이 취약하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 하청부품사 투쟁이 대부분 지역 차원에서 발생하지만, 막상 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상급 단체나 지도조직이 없는 형편이다.
지역은 실제로 다양한 산업·업종 노동자들 간에 계급적 연대와 투쟁을 일상적으로 벌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예컨대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은 산업에 종사하지만, 그보다 먼저 같은 울산 동구에 살고 있다. 그들의 자녀는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시장에서 장을 보며, 같은 병원에 간다. 지역연대조직은 이러한 생활 공간의 공통성을 기반으로 산업별 조직이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으며, 나아가 소속이 다른 기업 간에도 긴밀한 연대를 조직할 수 있다. 지역연대조직과 산업별 조직은 씨줄과 날줄처럼 똑같이 중요한 조직으로서 조직구조 속에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에서 건설될 지역연대조직—우리는 이를 '울산 노동자 연대회의'(가칭)라고 부르자—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조에 대한 탄압이 발생하면 즉각 연대투쟁을 조직한다. 대기업 정규직노조의 참여를 조직하고, 지역 전체 차원의 투쟁으로 확대한다. 나아가 재벌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반재벌'이라는 공동의 투쟁 목표를 설정한다. 교육·선전 사업을 통해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정치 소양을 함양한다. 그밖에,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서 노동권 보호 정책을 실현하며, 진보정당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현장 기반을 구축한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서 선거 과정 자체가 연대조직 건설에 복무하는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진보진영 자치단체장이 제시하는 핵심 공약은 다른 무엇보다 ‘노동자 단결의 인프라를 깔겠다’는 것이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기조 위에서 이하 구체적인 3대 핵심 공약을 진보진영에 제언코자 한다. 이는 ‘무엇을 해주겠다’는 시혜적인 약속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싸울 수 있도록 어떠한 무기와 공간,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구체적인 복무 계획이다.
⓵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한 공공 인프라를 제공
- 조례 제정을 통해 과거 노정협의체 또는 지역 노사정협의체를 노동중심으로 강화하여 원·하청 사용자,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이주민 지원단체, 전문가가 모두 참여하는 상설 협의기구인 '노동권리지원협의회'를 구청장 직속 기구로 설립한다. 이 위원회는 하도급 단가, 고용 안정 등 핵심 현안을 논의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개별 노조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의제들을 지역 전체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구심점이 되도록 한다.
- 노동자 단결의 첫걸음은 만남과 소통이다.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회의하고 교육받으며 투쟁을 모의할 수 있도록 동주민센터, 구민회관 등 시 소유 유휴 공간을 24시간 전면 개방하여 ‘노동자 연대 공간’으로 제공한다.
- 정보는 힘이다. 매년 시 예산으로 ‘원·하청 노동실태 정기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울산 노동권 대시보드’ 형태로 투명하게 공개한다. 재벌이 독점해 온 정보를 노동자의 손에 쥐어줌으로써,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투쟁과 조직이 가능토록 한다.
⓶ 울산시 구청을 노동자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노동 존중의 성채(城砦)’로 만든다.
- 이를 위해서 시정과 구정의 최우선 순위를 노동에 두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예컨대, 울산시장 후보는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노동경제부시장’직 신설과 1,000억 원 규모의 ‘노동기금’ 조성을 약속할 수 있다. 시 또는 구에서 조성한 노동기금은 단순히 어려운 노동자를 돕는 시혜적 자금이 아니라,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생계비 긴급 융자, 악질적인 임금체불 발생 시 선지급, 소규모 노조 설립과 활동 지원, 집단적 권리구제를 위한 법률비용 등 노동자들의 투쟁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병참’으로 기능토록 한다.
- 당선 즉시 울산시와 구, 그리고 모든 산하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제로(Zero)를 선언한다.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공무직)으로 전환하는 로드맵을 이행하여 모범을 보이도록 한다.
- 시와 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예산’을 활용한다. ‘노동 존중 공공조달 조례’를 전면 강화하여 임금체불이나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3년간 입찰에서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행정의 문턱 또한 완전히 낮춰, 구청장이 직접 매주 현장을 찾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찾아가는 노동상담소’를 운영하는 등 발로 뛰는 노동 행정을 실천하도록 한다.
⓷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재벌의 불법을 파고드는 ‘벌침’이자 노동자의 투쟁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 시장 직속으로 변호사, 노무사, 회계사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기업 불법행위 특별조사단’을 설치하도록 한다. 이들은 중앙정부의 권한이 아닌, 지자체가 가진 건축, 소방, 환경, 위생 등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 재벌 사업장과 하청업체의 불법과 편법을 샅샅이 찾아내고, 법이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기업 발목잡기’가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해 온 재벌을 법의 심판대 아래로 끌어내리는 정의의 실현이다.
- 더 나아가, 시와 구 차원에서 다국어·익명 신고가 보장되는 ‘노동권익 증거수집 센터’를 운영토록 한다. 이곳은 단순히 민원을 접수하는 창구가 아니라,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파견, 산재 은폐 등의 사례들을 법적 대응이 가능한 ‘증거 패키지’로 가공하여 중앙정부와 사법기관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들고,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는 투쟁의 사령탑으로 기능하는 곳이다.
- 이러한 활동은 풀뿌리 감시망과 결합될 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동구 내의 현장 노동자와 주민을 ‘노동인권 감시관’으로 위촉하여 사업장 내 인권침해와 안전 문제를 상시적으로 제보받고, 시 특별조사단과 연계하여 즉각 대응하는 그물망 감시체계를 구축토록 한다.
이상의 모든 사항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단결하고 투쟁하여 ‘지역연대조직’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 복무하기 위한 발판이다. 선거 과정에서 각 사업장과 지역에서 꾸려질 선거대책위원회는 선거 이후 (가칭)‘울산 노동자 연대회의’와 같은 상설적인 연대조직으로 전환을 추진해 간다. 이 조직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연대투쟁을 조직하고, 대기업 정규직노조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나아가 재벌체제에 맞선 공동의 정치투쟁을 전개하는 구심점이 될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번 강조할 점은, 진보정당과 그 후보들이 이처럼 철저히 현장의 대단결에 복무할 때, 노동자들은 비로소 진보정당을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진정한 계급 정당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은 곧 진보정당의 가장 굳건한 자산이며, 진보정당의 대중적 기반 확대라는 값진 결과로 보답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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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