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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있는 반면, 시간에 지배되는 사람이 있다. 강자가 시간을 지배하고 약자는 시간에 지배 당한다.
강자는 충분한 시간의 여유를 누리고, 약자는 밥벌이에 쓸 시간조차 모자란다. 시간 지배의 자유도 순으로 보면, 제일 위에 1%의 거부 자산가가 있고, 자본가,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마지막에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열악한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노동자계급, '불안정하다'는 뜻의 이탈리아 말 프레카리오와 프롤레테리아트의 합성어)가 있다.
<시간 불평등>(창비, 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 2024년 12월)은, 시간의 불평등이 만연한 현실과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 가이 스탠딩은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사회 계급 개념을 정립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주창해온 선구적인 경제학자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저자는 '시간이 본래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라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시간의 변천 과정을 역사적으로 돌아본다. '고대의 시간', '농업적 시간', '산업적 시간', '제3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고대의 시간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랬듯이 노동과 일, 여가, 놀이, 관조의 5가지로 구분됐던 시간이다. 저자는 고대의 시간을 우리가 돌아갈 시간의 좌표로 생각한다. 마치 타락한 기독교가 원시 기독교를 모범으로 삼듯이 말이다.
이런 고대의 시간은, 산업의 발전과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농업의 시간에서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지만 공유지 및 공유화에 쓰는 시간은 남아 있었다. 저자가 "영국에서 모든 위대한 사회적 반란과 항의운동은 공유지 및 공유화의 상실에 맞서 이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산업화의 시간에서는 발흥하던 자본주의가 노동이 아닌 일과 공유화를 억눌렀다. 그에 따라 독립적인 일과 공유화에 쓰던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노동시간이 대폭으로 늘어났다. 저자는 "산업적 시간 시대의 결정적인 시간의 전환은 여가에서 '휴식'으로 전환이었다"라고 말했다. 여가가 노동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노동주의'의 승리라고 말한다.
저자는 '제3의 시간'을 노동주의의 마지막 구간이라고 표현한다. 시간을 가장 불안정하고 쓰는 계층인 프레카리아트의 시간인 것이다. 제3의 시간은 1970년대 이래 정보기술혁명의 발전과 함께 찾아왔다. 제3의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경계가 없는 시간 사용 체제다. 0시간 계약제, 가변 시간 계약, 파트타임 임시직, 파견노동, 가짜 자영노동 등이 등장했다. 부호 계급을 제외한 거의 모든 노동자는 더욱 불안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전락했다.
특히, 프레카리아트는 정해진 노동시간이나 작업장이 없고 숙련기술이 필요 없는 임시직, 단기 계약직, 심부름 노동, 플랫폼 노동 등에 동원된다. 그들은 그런 일자리의 불확실성 때문에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거의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더 심각하게는 대기와, 구직을 위한 서류 작성과 교육훈련 참가 등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일에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한다.
자유주의자나 심지어 사회주의자도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으로 '완전 고용'을 주장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일자리 보장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무의미한 일자리에 매달리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기만적인 일자리 보장 제도가 아니라 일할 권리 대신 일하지 않을 권리를 우선시하며 모두의 시간의 존중하는 '소득-분배 체제'를 정립하는 것이야말로 시간 불평등 해결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시간의 해방')이 그가 꿈꾸는 세계의 모습이다. 그는 2030년에 일어날 가상의 영국 정치를 묘사하며, 시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자본주의 현실을 바꿔가는 모습을 제시한다.
우선, 모두가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시간에 대한 자유를 확보할 수 있도록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이 기본소득의 재원은 토지가치세와 탄소 배출 부담금 등 공유지의 착취에 매겨진 요금으로 마련한다. 노동과 생산으로 경제성장을 평가하는 GDP 대신 시간의 질, 불평등 감소,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새로운 경제지표를 도입한다. 그간 일자리와 같은 지불노동에만 집착하느라 주변화되었던 돌봄 노동이나 가사노동 등의 활동이 가치를 인정하고 경제 평가에 포함한다는 것 등이다. 핵심은 공유화다.
"정치와 경제는 시간 사용을 전유하는 적절한 방식을 찾는 데 달려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모델을 제공한 바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람들 대부분이 저지른 역사적 오류, 그리고 표면적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한 정당들의 분명한 역사적 오류는 자본주의 지지자들이 노동을 위한 시간과 소비를 위한 시간이라는 이원론을 시간 사용을 논의하는 프레임으로 만들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448쪽)
이런 프레임을 여가를 되찾고 공유화와 돌봄을 복원하는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내용이 쉽지 않다. 끝까지 읽느라 고생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남는다. 잃어버린 여가와 공유를 되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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