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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은 2차대전 이후 벌어진 최대 규모의 열전이다. 미국은 한때 50만 명이 넘는 미군을 베트남 전쟁에 투입하고도, 베트남을 석기 시대로 돌려놓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포탄을 봇물처럼 퍼붓고도 끝내 패전하는 치욕을 맛봤다.
미국은 단지 전쟁에서 지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의 여파는 전국을 휩쓴 반전 데모가 상징하듯이 미국 사회를 크게 분단시켰다. 아직도 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다. 병사들을 가급적 타국의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풍조도 이때부터 생겼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한국은 1965년부터 73년까지 연인원 32만 명의 병사를 파병했고, 이 가운데 사망·실종자가 5천 명 이상, 1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고엽제 피해자는 16만 명이 넘는다. 300만 명이 넘는 베트남인 사망자 중에는 한국군이 학살한 사람도 상당수 들어 있다.
미국과 베트남은 철천지원수처럼 싸웠지만 전쟁이 끝나고 20년 뒤인 1995년 8월 국교를 정상화했다. 2023년에는 두 나라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격세지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의 진행이다.
<적과의 대화>(원더박스,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 2018년 9월)는 베트남 전쟁에 관여했던 양쪽 당사자들이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97년 하노이에서 3박 4일 동안 만나 '비극적인 베트남 전쟁을 회피할 방법은 없었는가'를 놓고 치열하게 대화한 기록에, 추가 취재를 더해 낸 책이다.

미국 쪽에서는 베트남 전쟁 때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를 좌장으로 당시 참전했던 군인, 협상에 참여했던 외교관, 학자 등 13명이 참석했다. 베트남 쪽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외무차관이었고 통일 뒤 오랫동안 외무부 장관을 지낸 응우엔꼬탁을 비롯해 군인, 외교관, 학자 13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3박 4일 동안 '베트남 전쟁은 피할 길이 없었는가?", "전쟁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끝낼 수는 없었는가?", "전쟁으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에 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일정도 그에 맞추어 짰다. 1일차는 양쪽의 당시 정세 판단에 시간을 할애했다. 2일차는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오전에는 주요 사건의 진상에 관해 논의하고, 오후에는 남베트남의 중립화 문제를 두고 대화했다. 3일차에는 전쟁 중에 미국이 제안했던 평화 협상을 주제로 대화했고, 마지막 4일차에는 대화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를 서로 얘기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이 책은 대화가 진행된 날을 따라가며 양쪽의 의견을 소개하는 식으로 서술됐다. 이들은 3박 4일의 치열한 대화를 통해 서로 상대의 의도를 오해했고, 이런 오해가 풀렸으면 전쟁은 더 일찍 끝날 수도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끝내 서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가장 격렬하게 대립했던 주제는 미국이 북폭을 하면서 협상을 제의한 것을 왜 베트남이 받지 않았느냐를 두고 벌어졌다. 맥나마라는 당시 미국은 평화 협상을 하는 데 진심이었다면서 베트남이 진지하게 협상에 임했으면 1973년보다 7, 8년 정도는 빨리 전쟁이 끝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쪽을 맹 반발했다. 베트남 쪽의 좌장인 응우엔꼬탁은 미국이 북폭을 계속하는 상태에서 협상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반론했다. 베트남 쪽의 다른 참석자인 쩐꽝꼬(당시 북베트남 대미정책국장)은 "베트남이 당시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독립과 자유만큼 고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인은 노예의 대화는 받아들이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즉, 폭격으로 압박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굴욕적인 협상에 응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미국을 은근히 비판하는 관전평을 내놨다.
"나는 미국과 베트남의 이 대화를 책으로 엮으면서, 어는 논점에 대해서도 어느 쪽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 전쟁 당사자가 30년 만에 마주 앉아 나눈 그 대화의 기록으로부터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들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중략> 그러나 맥나마라의 의견, 즉 '베트남의 지도자는 연간 100만 명이라고 이야기되는 베트남인의 희생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평화 협상에 응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주장에는 솔직히 말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연간 100만 명에 이르는 베트남인을 죽인 것은 미국의 군사력이고, 그런 최고 사령관이 맥나마라 자신이 아니던가?"(189쪽)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 날의 대화, 즉 3박 4일의 대화를 통해 양쪽이 무엇을 배웠는가에 있다. 길지만 양쪽의 대표적인 발언을 소개한다.
"베트남 전쟁과 같은 비극을 21세기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대국은 소국을 장기판 위의 말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대국을 접할 때와 마찬가지의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합니다. 맥나마라 씨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대국이 소국을 오만과 무지의 태도로 취급하면 그것은 대국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소국 역시 대국과 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도록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소국끼리 지역의 결속을 강화하여 함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의 중요성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미국과 베트남의 상호 이해를 촉진하고 보다 나은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이 대화를 계속하기를 강하게 희망합니다."(196~7쪽, 쩐꽝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1961년 단계에서 미국과 베트남이 상대방의 의지와 동기에 대해 전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자신의 생명선까지도 위협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트남은 미국을 프랑스와 동일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독립과 통일에 반대하는 식민주의 국가라고 생각한 겁니다. 한편 우리는 하노이 정부를 동남아시아 전체에 공산주의를 확대시키려고 하는 중국과 소련의 앞잡이라고 판단해 버렸습니다." (197~8쪽, 맥나마라)
맥나마라는 또 저자와 대화 뒤 개인적인 취재 만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의 결론으로 삼아도 손색없다.
"하노이 대화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쌍방의 지도자가 보다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대화의 교훈을 바르게 배운다면, 미래에 이와 같은 전쟁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일지라도 최고 지도자끼리의 대화, 그렇습니다.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게을리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209쪽)
그러나 지금 세계의 지도자들이 이런 교훈에서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책은 대화도 대화지만, 이 대화를 취재해 책으로 엮어낸 당시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의 피디이자 이 책의 저자인 히가시 다이사쿠 씨의 치열하고 끈질긴 저널리즘 정신에서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옥석 가리지 않고 발화자의 화끈한 얘기를 단순하게 전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한국의 기자들은 이 책을 읽고 반성해야 한다. 저자는 <뉴욕타임스>에 이런 대화가 있었다는 단편적인 기사를 근거로 맥나마라를 비롯한 미국과 베트남 관계자와 끈질기게 접촉하고 취재한 끝에 이런 훌륭한 대화를 책으로 복원해냈다. 같은 업계에서 밥을 먹었던 사람으로서 저자의 노력과 성과에 머리 숙여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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