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오피니언
-
전국노동
-
지역소식
-
전국노동
-
전국노동
사회생활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며, 실천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다. 사람들은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관계를 개조하고 창조하는 동시에, 인간 자신을 또한 끊임없이 개조하고 창조한다. 따라서 사회발전과 인간의 발전은 동일한 과정의 두 측면이다.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 또는 자기 변화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이해되고 합리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역사적 유물론은 동시에 변증법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활동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본질과 발전 법칙을 탐구하는 동시에, 사회관계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본질과 발전 법칙을 탐구한다. 이는 사회의 본질과 발전 법칙을 밝히는 동시에, 인간의 본질과 발전 법칙 역시 밝힌다. 인간의 발전이 인간의 의존관계, 물적 의존관계를 기초로 한 인간의 독립성이라는 역사적 형태를 거친 후 자유로운 개성의 형태로 나아가고, 인간의 전면적 발전의 사회 형태인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간다.
ㅡ '사회 형태' 개념
사회와 '사회 형태'는 서로 연관되면서도 구별되는 두 개념이다. 사회는 좀 더 추상적인 일반 개념으로서,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및 자연과의 존재적 차이를 표시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사회는 - 그 형식이 어떻든 -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는 항상 구체적이며, 사회와 그 발전을 고찰할 때 사회의 구체적 형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로써 '사회 형태' 개념이 형성된다. 사회 형태는 사회가 가진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며, 일정한 생산력 기초 위에서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의 통일체이자, 사회의 경제 형태, 정치 형태, 문화 형태의 통일체이다.
사회 형태는 각각의 구체적인 현실의 사회 공동체와 동일하지 않다. 사회 형태는 일반적인 사회보다 구체적이지만,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 개념으로서 상당한 개괄성을 가진다. 현실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사회 공동체, 예를 들어 각자 특색을 가진 민족이나 국가가 모두 독립적인 사회 형태인 것은 아니다. 미국 사회를 하나의 사회 형태로, 일본 사회를 하나의 사회 형태로, 독일 사회를 하나의 사회 형태로 볼 수는 없다.
사실 현재의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사회는 각각 특징이 있지만, 모두 동일한 사회 형태 즉 자본주의 사회 형태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시대에 많은 다양한 사회 공동체가 존재했으며, 각각 자신만의 특색을 가졌다. 사회 형태라는 개념은 이러한 다양한 사회 공동체들을 개괄하여 그들 사이의 공통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서 사회발전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다.
ㅡ 역사적 사회 형태의 5가지 유형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는 다섯 가지 사회 형태가 형성되었다. 즉, 원시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공산주의 사회의 첫 단계)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 사회의 발전은 이 다섯 가지 사회 형태의 교체로 나타난다.
원시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 이 다섯 가지 사회 형태의 출현과 교체는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의지로도 바꿀 수 없는 객관적 과정이지만, 이 객관적 과정은 자체적인 특징을 가진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객관적 과정의 두 형태: 자연계(기계적 및 화학적)와 인간의 목적 있는 활동."(레닌, "철학노트)
이 관점은 실제로 자연 운동과 사회운동이 두 가지 다른 계열의 발전 형식에 속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즉 자연 운동은 즉자적 형식이고, 사회운동은 자각적 형식에 속한다. 자연 운동은 기계적 운동, 물리적 운동, 화학적 운동에서 생물학적 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생적이고 목적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발전의 법칙성은 자생적이고 목적 없는 활동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반면 사회운동의 주체는 인간이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따라 사회활동을 한다.
ㅡ 사회발전의 결정성과 인간의 선택성
어떤 사회 법칙의 실현도 인간의 의식적이고 목적적인 활동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계에서는(인간의 자연계에 대한 반작용을 제외하면) 모두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힘들이 서로 작용하며, 일반적인 법칙은 이러한 힘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납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어떤 일도 예상된 자각적 목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반면, 사회 역사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의식을 가지고, 사고를 거치거나 열정에 따라 행동하며,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일도 자각적 의도나 예상된 목적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프리드리히 엥겔스, "반뒤링론(Anti-Dühring)")
자연 발전은 자연계의 각종 요소가 자발적이고 맹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반면, 사회발전은 사람들의 의식적이고 목적적인 활동의 상호작용 결과이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사회발전은 사람들의 실천 활동이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것에 불과하며, "이른바 세계 역사 전체는 인간이 인간의 노동을 통해 탄생하는 과정일 뿐이다."(카를 마르크스, 『1844년 경제학·철학 초고』 )
사회발전의 자각성이 사회발전의 객관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양자의 관계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일한 과정의 두 측면이다. 엥겔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역사는 이렇게 창조됩니다. 즉 최종적인 결과는 항상 많은 개인 의지들의 상호 충돌에서 생겨나며, 그중 각각의 의지는 많은 특수한 생활 조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서로 교차하는 힘들, 무수한 힘의 평행사변형이 있으며, 이로부터 하나의 합력, 즉 역사적 결과가 생겨납니다. 이 결과는 다시 전체로서 무의식적이고 비자발적으로 작용하는 힘의 산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한 사람의 소망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방해받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항상 자연 과정처럼 진행되었으며, 본질적으로도 동일한 운동 법칙에 따릅니다."(프리드리히 엥겔스, "루드비히 페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이는 비록 사람들이 모두 목적적이고 의식적인 활동을 하지만, 사회발전의 현실은 종종 이 사람들이 기대한 것도, 저 사람들이 희망한 것도 아니라 "역사적 합력"의 운동 결과이며, 사회발전의 전체적 경향은 어떤 사람의 의지로도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의 소망과 개인 활동의 충돌이 사회발전의 ‘합력’을 구성하고 사회발전의 객관성을 형성하는 이유는, 타인의 활동이 어떤 사람의 활동을 제약하고, 타인의 활동이 바로 어떤 사람의 활동을 제약하는 객관적 조건이 되며, 앞 사람의 활동이 뒷사람의 활동을 제약하고, 앞 사람의 활동이 바로 뒷사람의 활동을 제약하는 객관적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활동은 어떤 사람의 활동 외부에 있고, 또 앞 사람의 활동도 뒷사람의 활동 외부에 있기에, 이들은 모두 비선택성을 가진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이나 뒷사람의 주관적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 타인의 활동이 어떤 사람의 활동에 가하는 제약은 생산관계가 개인 활동에 가하는 제약이며, 앞 사람의 활동이 뒷사람의 활동에 가하는 제약은 앞 사람이 창조한 생산력이 뒷사람의 활동 및 관계에 가하는 제약이다. 생산력은 근본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결정하며, 사회 형태의 교체가 일종의 자연 역사적 과정으로 나타나게 한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이 일정한 단계에 발전하면, 그것들이 계속 움직이던 기존의 생산관계 또는 재산관계(이는 단지 생산관계의 법률적 표현일 뿐임)와 모순을 일으킨다. 그러면 이러한 관계들은 생산력의 발전 형식에서 생산력의 족쇄로 변한다. 그때 사회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도 느리게 또는 빠르게 변혁이 일어난다… 어떤 사회 형태도 그것이 수용할 수 있는 모든 생산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전에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며, 새롭고 더 높은 생산관계는 그것의 물질적 존재 조건이 옛 사회의 태내에서 성숙하기 전에는 결코 출현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는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 제기한다. 왜냐하면 자세히 살펴보면, 과제 자체는 그것을 해결할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생성 과정에 있을 때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현대 부르주아적 생산방식은 경제적 사회 형태 발전의 여러 시대로 볼 수 있다.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는 사회적 생산과정의 마지막 대립적 형식이다…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발전하는 생산력은 동시에 이러한 대립을 해결할 물질적 조건을 창조한다. 따라서 인류 사회의 선사 시대는 이러한 사회형태로 끝난다."(카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1859))
마르크스의 이러한 서술은 사회 형태 교체의 객관성, 필연성, 결정성을 깊이 있게 밝혀냈다.
인류 전체 역사로 볼 때, 다섯 가지 사회 형태의 순차적 교체는 사회발전의 일반 법칙을 체현하며, 하나의 결정적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구체적인 민족 역사로 볼 때, 사회발전은 엄격하게 다섯 가지 사회 형태의 순서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주체의 선택성이 중요한 역할을 발휘한다.
한 구체적 민족의 현실 생활에서, 그 내부의 기본모순과 외부의 각종 요소, 조건들이 종종 서로 얽혀 상호작용하고 상호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러한 상호작용과 상호 영향이 해당 민족의 발전에 다양한 가능성으로 구성된 "가능성 공간"을 제공한다. 한 민족의 역사가 전환점에 있을 때, 사회발전은 종종 여러 가능한 경로를 보여준다. 여러 가능성 중에서 어떤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는지는 이 민족의 자각적 선택에 달려 있으며, 이 민족 내부의 서로 다른 계층이나 집단의 실천적 역량의 대비에 달려있다. 선택은 한 민족이 하나 또는 여러 사회 형태를 뛰어넘어 다른 경로를 통해서 더 높은 단계의 사회 형태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한 민족이 이러한 혹은 저러한 선택을 하는 것은 민족 이익에 달려있다. 민족의 이익은 한 민족이 역사적 선택을 하는 직접적인 동기이다. 또한 역사적 필연성과 본 민족의 특징을 파악하는 정도에 달려있으며, 이러한 파악의 정도는 역사적 선택 활동의 내용과 방향에 직접적인 제약을 준다. 어떤 민족이 사회주의를 선택하여 자본주의 단계를 뛰어넘은 것은 그 민족이 역사적 필연성과 본 민족의 특징을 파악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는 사회발전의 여러 가능성 중에서 이루어진 최선의 선택이며, 위대한 역사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사회발전 과정에서 주체의 선택성은 사회 형태 교체의 결정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의 선택성과 사회발전의 결정성은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선택의 대상은 가능성 공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가능성 공간은 선택 활동의 전제이다. 하지만 이 가능성 공간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생산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주체의 역사적 선택은 기존의 전제를 가지며, 사회 법칙의 제약을 받는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전체적 진행 과정을 바꿀 수 없다. 인류 사회의 발전은 ‘목적성’과 ‘법칙성’의 통일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사회경제 형태의 발전이 자연의 과정 및 자연의 역사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ㅡ 사회 형태 교체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회발전의 결정성과 주체 선택성은 사회 형태의 교체가 통일성과 다양성을 나타내게 한다. 사회 형태 교체의 통일성은 인류 전체 역사 과정이 원시 사회 - 노예 사회 - 봉건 사회 - 자본주의 사회 - 사회주의 사회, 이 다섯 가지 사회 형태의 순차적 교체로 나타난다는 점에 있다.
사회 형태 교체의 다양성은 서로 다른 민족이 특정 조건에서 어떤 하나 또는 여러 사회 형태를 뛰어넘어 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인류 전체 역사 과정의 초월 불가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민족이 그들이 처한 역사적 환경과 상관없이 반드시 다섯 가지 사회 형태의 순차적 교체라는 역사적 궤도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어떤 민족 또는 여러 민족은 특정 사회 형태를 뛰어넘어 직접 더 높은 단계의 사회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유럽의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을 정복한 후 노예제를 뛰어넘어 원시 사회에서 직접 봉건 사회로 나아갔으며, 동유럽의 일부 슬라브족과 아시아의 몽골족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북미 대륙은 유럽 이민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여전히 원시 사회에 있었지만, 유럽 이민자들의 도착과 함께 북미 대륙은 신속하게 자본주의 제도를 수립했으며, 오세아니아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일부 민족이 노예 사회에서, 일부는 심지어 원시 사회에서 직접 자본주의 길로 나아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생겨나는 세 가지 길을 지적했다. 즉, 봉건제도의 ‘쇠퇴’에서 생겨나는 길, 노예제와 농노제의 ‘해체’에서 생겨나는 길, 원시 공유제의 ‘붕괴’에서 생겨나는 길이다. 이 중 첫 번째 길이 전형적인 길이며, 다른 두 길은 사회 형태 교체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사회 형태 교체의 다양성은 인류 전체 역사 과정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민족은 특정 역사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만, 그 역사적 발전 노선은 인류 전체 역사 과정과 반대 방향일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도약의 방향은 인류 전체 역사와 일치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 형태와 그 생산력이 도약의 한계를 규정하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더 선진적인 사회 형태는 도약에 방향성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민족이든 특정 사회 형태를 뛰어넘는 것은 세계, 특히 주변 국가에 이미 더 선진적인 사회 형태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실현되었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존재 및 그것이 후진국에 미치는 영향, 충격, 침투가 없었다면, 일부 민족은 봉건제나 노예제를 뛰어넘어 직접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시 소비에트 러시아가 없었다면, 반봉건 반식민지 상태에 있던 중국도 자본주의 역사 단계를 뛰어넘어 직접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민족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자신의 민족적 특징, 역사적 전통 및 "외부에서 작용하는 역사적 영향", 즉 국제 환경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회적 존재 형식을 선택, 설계, 창조한다. 자본주의의 사회 형태를 뛰어넘어 직접 사회주의로 나아간 것은, 역사적 필연이면서 당시 중국 인민의 자각적 선택이었다. 현대 중국의 실제 상황과 시대적 특징에서 출발하여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 역시 역사적 필연이면서, 또한 중국 인민의 새로운 자각적 선택과 위대한 창조이었다.(계속)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