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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에서 주최한 ‘2025년 정세전망’ 강연이 열렸다. 이번 강연은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서, 향후 우리 사회의 대개혁 방향과 진보 변혁진영의 과제,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깊이 있게 조망했다. 특히 권영숙 소장(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은 “정세는 전망이자 전술”이라는 명제로 현 정세를 분석하며, 개헌이 아닌 ‘제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해 참가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ㅡ 대선 국면, ‘예비무대’에서 대개혁의 방향을 묻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선 정국 한가운데 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은 저마다 개혁과 변화를 외치며 표심을 잡기 위해 분주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누가 대개혁의 주도권을 쥘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경로로 사회 변혁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권영숙 소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진보·변혁 진영이 직면한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녀는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시도와 헌정질서 파괴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이를 계기로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근본적 변혁의 움직임이 왜 일어나지 못했는지, 그리고 진보 진영이 왜 ‘내란세력 단죄’와 ‘별도의 권력기구 설치’ 같은 정치적 상상력을 현실화하지 못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헌법개정국면과 맞물려 진보 진영이 어떤 전략과 실천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예비적 논의이기도 하다.
ㅡ “세계는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9개의 질문으로 정세를 해부하다
권영숙 소장은 “세계는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질문을 9개의 하위 질문으로 구체화했다.
- 현시대 모순과 위기의 성격, 정체, 실체는 무엇인가?
- 미국 헤게모니와 전세계 정치경제적 질서 변동의 핵심은 무엇인가?
- 미국 트럼프 정권 2기의 성격과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 과연 극우파 준동이 한국부터 전지구까지 문제인가?
- 한국 12.3 계엄의 국제적, 국내적 원인은 무엇인가?
- 계엄탄핵 이후 한국의 정치는 어디로 가는가?
- 한국 사회 모순은 사회계급적인가, 정치문화적인가?
- 한국 자본주의 발전전략의 한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 사회운동의 한계와 좌파 노동계급운동 정립의 과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이 9개의 질문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다. 권 소장은 “질문을 제대로 던지는 것이 곧 답을 얻는 최상의 방식”이라며, 각각의 질문이 서로 연관되고 중첩되며, 결국 ‘정세’라는 핵심 개념으로 수렴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세는 전망이자 전술이며, 동시에 주체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정세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실천의 방향과 전략이 결정되고, 이는 다시 새로운 정세를 만들어내는 순환구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ㅡ 12.3 계엄, 탄핵, 그리고 민주주의 ‘마스트프레임’의 함정
강연에서 권 소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시도와 그 이후의 탄핵 국면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녀는 “계엄이 해제된 후 윤석열 퇴진운동은 모든 의제를 ‘나중’으로 미뤘다. 민주주의 회복 프레임이 민주당부터 좌파운동까지 공유되는 과정에서 불평등, 차별금지, 노동탄압 등 핵심 의제들이 민주주의의 하위 어젠다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프레임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반복되어온 ‘민주주의’라는 마스트프레임(특정 구조물을 지지하거나 구성하는 틀-주)의 한계와도 연결된다.
불평등, 노동, 페미니즘, 차별금지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이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부차화되고, 헌정질서 수호라는 보수적 논리가 체제 전환의 동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윤석열 탄핵과 내란세력 척결을 둘러싼 총단결 구호는 87년 체제의 복원, 회복 논리로 귀결되었고, 그 결과 사회 대개혁의 전망은 더욱 막연해졌다는 진단이다.
ㅡ “정치적 경로에 대한 상상력, 왜 실현되지 못했나”
권 소장은 특히 “정치적 경로에 대한 상상력 부재”를 지적했다.
윤석열의 계엄 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이라는 제도적 절차에 좌우를 막론하고 너무 쉽게 동의한 점, 그리고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정치적 실험(예를 들어 임시정부, 거국 중립내각 등)을 상상하거나 실천하지 못한 점을 한계로 꼽았다.
그녀는 “법에 의존적인 제도적 해결 트랙과, 대중의 혁명적 힘이 발산되는 트랙이 공존하거나 경합하는 ‘이중의 정치과정’이 필요했으나,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평했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12월 16일 성명서만이 그나마 대안적 상상을 제시했을 뿐, 좌파 단체들조차 이를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ㅡ “정세론의 오류, 자본주의 위기를 곧바로 주체의 위기로 환원하지 말라”
강연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정세론’ 자체에 대한 자기비판적 성찰이었다.
권 소장은 최근 유행하는 ‘자본주의 복합위기’, ‘다층위기’ 담론을 비판하며, 자본주의의 위기를 곧장 운동 주체의 위기로 환원하거나, 위기 담론에서 바로 전술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오류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정세는 객관적 조건만이 아니라, 주체의 인식과 실천, 그리고 정치적 경로의 선택이 결합될 때 비로소 전망과 전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ㅡ 87년체제의 파시즘적 뿌리와 헌법개정 논의의 한계
권 소장은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 그 뿌리 깊은 파시즘적 요소와 6공화국의 구조적 한계까지 분석의 지평을 넓혔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라는 개념을 통해, 2010년대 이후 한국 정치와 운동이 점점 더 제도화·사법화되는 경향을 비판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운동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강화시켰고, 이번 윤석열 탄핵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ㅡ “개헌이 아니라 제헌이다”…민중의 제헌적 힘을 조직하라
강연의 결론에서 권영숙 소장은 “현 정세에서 민중의 제헌적 힘을 만들어내고, 개헌이 아니라 제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헌법 일부 조항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헌정질서와 헌법기관들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인민주권에 입각한 새로운 헌법제정과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적 힘으로서 인민주권을 민중 중심으로 구체화하고, 제헌권력의 형성을 통해 헌법제정의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실천적 제언은, 진보·변혁 진영이 향후 헌법개정국면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ㅡ “정세는 전술, 운동의 주체 형성은 실천에서”
민주주의와노동연구소는 매년 정세론 강연을 통해 “정세는 전술”임을 드러내고, 운동의 전술을 통해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2025년 정세전망 강연 역시 정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며, 운동과 이론의 우경화에 맞서는 좌파적 이론과 담론의 구성을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
강연자는 “세계의 해석이 아닌 변혁,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구체적 개입”을 연구소의 역할로 제시하며, <전망과실천> 등 연구소의 다양한 글들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토론과 실천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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