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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우리 시대의 진리와 지혜이다. 철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정체성과 그 탄생 배경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ㅡ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체계적 통일성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과학적 실천관을 핵심으로 변증법과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의 자연관과 역사관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엄밀한 과학적인 철학 체계이다. 이 체계에서 유물론과 변증법, 자연관과 역사관은 단순히 병렬된 요소들이 아니라 상호 침투하는 통일체를 이룬다. 레닌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의 강철 덩어리로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는 어떤 기본 전제나 중요한 부분도 제거할 수 없으며, 그렇지 않으면 객관적 진리에서 벗어나 부르주아 반동적 오류의 품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이는 단순히 유물론에 변증법의 법칙이 추가된 것이 아니라, 유물론 자체가 변증법적 성격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 사유와 존재의 상호관계, 인식의 본질과 메커니즘 등의 원리들은 모두 변증법적 특성을 지니며, 이는 관념론을 비판하면서도 구(舊) 유물론과 구별된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유물변증법이다. 이는 변증법이 유물론과 공존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변증법 자체가 유물론적 기반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변증법적 운동에는 객관적 담지자(擔體)가 있다. 자연변증법은 자연계 자체의 변증법적 운동이고, 사회변증법은 물질적 생산방식을 토대로 한 사회의 변증법적 운동이며, 인간의 실천변증법 역시 객관적 성격을 지닌다. 생산적 실천이 갖는 기초적 작용, 실천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 실천과 인식의 순환적 발전, 그리고 실천의 절대성과 상대성의 관계 등은 모두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법칙이다. 주관적 변증법은 이러한 객관적 변증법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ㅡ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통일성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별개의 이론이 아닌 하나의 통일된 체계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변증법을 구출하여 유물론적 자연관과 역사관으로 전환했다고 평가하면서, "현대 유물론은 본질적으로 모두 변증법적"이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여기서 이 두 개념을 병렬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구 유물론처럼 역사를 유물론 밖에다 두는 불완전한 유물론이 아니며, 가장 철저하고 완성된 유물론이고, 이러한 완성은 역사적 유물론에서 집중적으로 실현된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유물론 철학의 상층부 구축, 즉 유물론적 인식론이 아니라 유물론적 역사관"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에서 레닌은 역사적 유물론을 철학적 유물론의 "심화와 발전"으로 규정하고, "마르크스는 철학적 유물론을 심화하고 발전시켜 자연계에 대한 인식을 인류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ㅡ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한계
일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체계에서 철학을 특별히 중시한다. 이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변증법과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분리시키고, 그 중 한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왜곡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유물론과 변증법을 분리하고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인 '인간학적 변증법'만을 강조하며, 자연변증법을 부정하고 물질과 운동을 분리하여 자연변증법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제거하려 한다. 이들의 관점에 따르면 변증법은 오직 인간의 실천에서만 비롯되며, 인간 외부의 대상이 고유하게 가진 것이 아닌 인간이 창조한 것이므로 인간을 떠나면 변증법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이나 인간의 실천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는 세계가 절대적 정지 상태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명백히 세계의 본래 모습과 자연 발전의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
ㅡ ‘실천관’의 중심적 위치
실천적 관점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가장 핵심적인 기초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실천관은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우선 세계관에서 보면, 실천관은 인류가 실천을 통해 자연을 개조하고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주변의 감성 세계는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라 산업과 사회적 활동의 산물이며, 실천을 배제하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다음 인식론에서 보면, 실천적 관점은 실천을 모든 인식의 원천, 동력, 그리고 진리성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역사관에서는 실천을 사회 존재와 발전의 근본 토대로 삼으며, 사회생활의 본질을 실천적 활동으로 파악한다.
요컨대, 실천관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로서, 이를 떠나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본질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ㅡ 마르크스주의 철학: "세계적 철학"의 등장
마르크스주의 철학 이전의 철학들은 대체로 민족적 특성을 강하게 지녔다. 공자, 노자, 주희, 왕양명, 칸트, 헤겔의 철학이 타민족과 타지역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이는 문화 교류와 전파의 차원에 머물렀고 철학의 민족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노장(老莊) 철학은 중국 철학이고, 칸트와 헤겔의 철학은 독일 철학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국제적 학설이다. 비록 독일이 발상지이지만,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철학"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철학의 출현을 예견했다.
"철학은 다른 특정 체계에 대해 더 이상 특정 체계가 아니라, 세계의 일반 철학, 즉 현대 세계의 철학으로 변하고 있다".(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1884년 제1판 서문)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보편적 철학이면서도, 또한 각 민족과 지역의 문화적 토양에 뿌리내림으로써 그 민족 문화의 일부가 될 수 있다. 1888년에 엥겔스는 이미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에서 "마르크스의 세계관은 독일과 유럽의 경계를 훨씬 넘어, 세계의 모든 문명어에서 지지자를 찾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전인류’의 초계급적인 철학은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대표하는 철학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계급은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철학적 체계를 필요로 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해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행하던 공상적 사회주의나 부르주아 세계관이 아닌,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필요했다. 엥겔스는 "노동자 계급이 유색의 법학적 안경을 쓰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때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 상황을 철저히 인식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노동자 계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강조했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중)
ㅡ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실천성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그 실천적 성격이다. 이 철학은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적극적인 개조를 강조한다. 헤겔이 철학을 황혼에 날아오르는 부엉이에 비유하면서 사후적인 반성의 학문으로 규정했다면(예컨대 "철학의 인식 방식은 단지 반성일 뿐이다. 즉 사실 이후에 따라오는 반복적 사고를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철학을 인류 해방의 새벽을 알리는 "갈리아의 수탉"으로 재정의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를 인류 해방의 심장으로, 그리고 철학을 인류 해방의 두뇌로 비유하면서 철학이 인류 해방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헤겔의 ‘부엉이’에서 마르크스의 "갈리아의 수탉"으로의 변화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단순한 해석이 아닌, 세계 변혁을 지향하는 실천적 철학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ㅡ 마르크스주의 철학 탄생의 필연성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으로 창립하고 마르크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지만, 이는 단순한 개인의 천재적 사유의 산물이 아닌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었다. 비록 마르크스가 없었다면 그의 이름을 딴 철학도 없었겠지만, 이것이 인류가 영원히 소박한 유물론과 비슷한 변증법적 사고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모든 철학 체계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개인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속한다. 19세기 중엽의 발달한 경제와 정치 관계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탄생을 요구했고, 또한 가능하게 했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만약 마르크스가 유물사관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티에리, 미네, 기조 및 1850년 이전의 모든 영국 역사편찬학자들은 이미 이 방면에서 노력해왔음을 보여준다. 모르건의 동일한 관점에 대한 발견은 이 같은 관점을 발견할 시기가 이미 성숙했고, 이 관점이 반드시 발견되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탄생은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천재적인 두뇌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철학 자체의 발전과 자연과학의 성과, 그리고 당시의 계급투쟁 상황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다.
ㅡ 사회경제적 배경과 계급투쟁의 발전
19세기 중엽의 서유럽 특히 영국, 프랑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출생지인 독일 라인 지역에서는 자본주의가 이미 상당히 발달해 있었으며,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 점차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숨겨져 있던 모순이 드러나고, 부차적인 요소들이 주요한 문제로 부각됐다.
1830년대부터 시작된 프랑스 리옹 노동자 봉기, 영국의 헌장운동(차티스트 운동), 그리고 독일 실레지아 노동자 봉기는 노동자계급이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자본주의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난 지역에서 살았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상적 발전과정에서 노동운동의 이론적 지주로서 새로운 철학을 창립해야 할 필요성을 점점 더 강하게 인식하였다. 1844년,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쾰른에서 3일을 머물렀는데, 우리가 거기서 전개한 거대한 선전 작업에 놀랐네. 그곳 사람들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필요한 지주(支柱)가 부족하다는 것도 분명하게 드러났네." "현재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몇 권의 큰 저서를 쓰는 것이야. 이를 통해서 매우 기꺼이 일하려 하지만, 스스로는 잘 할 수 없는 많은 피상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지점을 제공해야 해."² <마르크스-엥겔스 서신 (1844년 10월 - 1851년 12월)>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창립한 것이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실제적 투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ㅡ 철학 발전사적 측면
인류의 문화 발전사적 관점에서 볼 때도,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다. 철학 분야에서는 2천 년이 넘는 발전을 거쳐 19세기 독일에 이르러서는, 헤겔 철학으로 대표되는 변증법과 포에르바하 철학으로 대표되는 유물론이 이미 구 철학의 범위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인류의 전체 철학 유산이 마르크스주의 철학 탄생의 문화적 토대였다면, 독일 고전 철학은 마르크스주의 철학 탄생의 직접적인 이론적 원천을 제공했다. 특히 헤겔의 변증법과 포에르바하의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ㅡ 자연과학의 발전과 영향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의 발견, 다윈의 진화론, 세포학설의 등장 등이 새로운 철학 탄생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엥겔스는 <자연법증법>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9세기에는 "경험적 자연 연구가 이미 방대한 양의 실증적 지식 자료를 축적했기 때문에, 모든 연구 영역에서 이러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그 내적 연관성에 따라 정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작업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각 지식 영역 간의 올바른 관계를 확립하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과학적인 발견들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했으며, 이전의 철학적 관점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적 체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ㅡ 역사적 필연성의 완성
19세기 상반기의 계급투쟁 상황, 철학 자체의 발전단계, 자연과학의 성과는 모두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 철학의 탄생이 가능하고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없었다면 아마도 다른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 이 역사적 과제를 완수했을 것이다. 역사는 결코 공백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때마침 그 시대에 그 지역에서 태어났고, 그들 자신이 뛰어난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같은 역사적 과제를 완수하고,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이 철학을 명명한 것은 역사적 필연성의 완성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단순히 두 사상가의 개인적인 성취가 아니라, 특정 역사적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시대의 산물이며, 이후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 철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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