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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석 열사의 장례가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지난달 20일 CU BGF리테일과의 투쟁 과정에서 숨진 지 33일 만이다. 장례는 3일 전남 순천시 일대에서 진행됐으며, 발인과 영결식에는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했다.
발인은 이날 오전 6시 50분 전남 순천시 정원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후 순천제일병원 앞에서 조례호수공원 사거리까지 행진이 이어졌고, 영결식이 진행됐다. 고인은 광주광역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 구묘역)에 안장됐다.
이날 장례에는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해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그가 남긴 투쟁의 의미를 되새겼다.
김동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싣고 달리던 서광석 열사의 화물차는 멈췄지만, 그의 외침은 45만 화물노동자의 심장을 타고 계속 달리고 있다”며 “열사가 남긴 투쟁의 정신은 화물연대의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광석을 살려내라는 절규를 ‘내가 서광석으로 살겠다’는 결의로 바꾸자”며 투쟁 의지를 강조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자본의 폭주 앞에 온몸을 내던진 열사의 정신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현실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열사가 열어낸 원청교섭의 길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쟁취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고 촉구하며 “오늘의 애도가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역시 “진작 교섭에 나섰다면 이런 죽음은 없었을 것”이라며 사측을 비판했다.
서광석 열사는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7년 조선대학교 입학 후 학생운동과 문화운동에 참여했다. 2011년 화물연대에 가입한 이후 전남지역에서 조직 활동을 이어왔으며, 2021년부터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지부 지부장을 맡아왔다.
열사는 지난달 20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BGF로지스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투쟁 중 2.5톤 탑차에 치이는 사고로 숨졌다. 당시 화물연대는 CU 편의점 배송 화물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총파업을 진행 중이었다.
한편 화물연대본부는 지난달 30일 BGF로지스와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합의안에는 열사 사망에 대한 책임 통감과 유가족 사과, 운송료 인상, 유급휴가 보장, 대차비용 상한 설정 등이 포함됐다. 특히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고 단체교섭을 정례화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그간 부정돼온 교섭 주체성과 노동조합 지위를 일정 부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물연대는 “이번 합의는 단순한 처우 개선을 넘어 원청 책임을 인정하게 만든 중요한 성과”라면서도 “열사의 죽음에 대한 모든 책임이 다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공권력 투입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화물연대본부는 장례 이후에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열사가 연 길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 장례 내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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