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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며
21세기 들어 한국의 노동운동과 변혁운동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전망과 언어를 분명히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전망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고 대안을 설계하는 기준이며, 그 기준이 흔들릴 때 운동은 전술의 나열로 흩어지기 쉽습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역사적 대안은 다양한 이름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체제 수준에서의 대안으로 압축하면 결국 사회주의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의 시간은 “사회주의”라는 이름이 곧바로 전망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사회주의를 말한다면 두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본질), 그리고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방식)’입니다.
본질론은 건설론의 나침반입니다. 하지만 나침반만으로 길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건설 방식의 문제로 들어가면 선택지는 크게 둘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계획경제를 중심축으로 삼는 사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경제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입니다. 전자는 종종 “민주적 계획경제”라는 개념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그것이 어떤 제도 장치와 유인 구조를 통해 작동하고, 어떤 방식으로 혁신·분배·지역 격차·국제무역의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거나 검증된 모델이 축적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후자는 중국이라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장기적 실험을 통해, 논쟁적이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성과와 모순을 함께 드러내며 ‘경험적 자료’를 축적해온 경로입니다.
이번 기획특집 연재 〈21세기 사회주의 경제학 ― 중국 사회의 경제학적 접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찬반을 미리 결론내기보다, 중국이 채택해온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무엇을 문제로 삼았고 어떤 정책·제도를 통해 답하려 했는지, 그 과정에서 등장한 핵심 개념(공유제의 역할, 국가와 시장의 관계, 분배원칙, 공동부유, 발전 전략 등)을 경제학적 언어로 정리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는 특정 국가의 모델을 “정답”으로 수입하려는 작업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대안 논의를 빈틈없이 만들기 위한 비교·검토의 재료를 마련하는 시도입니다.
연재의 기본 텍스트는 중국 일반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널리 활용되는 경제학 교재를 참고합니다. 전문 연구자들만의 논쟁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 운동과 사회적 토론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핵심 개념을 쉽게 풀되, 논점은 날카롭게 다룰 것입니다. 중국식 사회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는 가능한가”를 넘어 “어떤 사회주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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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사회주의경제 제도의 수립과 사회주의의 본질
본 장은 사회주의 정치경제학 부분의 첫 장으로, 먼저 사회주의경제 제도의 수립 및 그 본질을 고찰하고, 새롭게 수립된 사회주의사회가 갖는 사회주의 발전 단계와 그 기본 경제적 특징을 분석한다. 본 장을 학습함으로써 사회주의경제 제도가 중국에서 어떻게 수립되었는지 이해하고, 사회주의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처한 사회주의 발전의 초급단계와 그 기본 경제적 특징을 인식하고,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주요모순, 기본노선 및 기본강령을 이해함으로써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한다.
제1절 사회주의경제 제도의 수립
1. 사회주의경제 제도 탄생의 전제조건 및 그 수립
사회주의경제 제도가 자본주의경제 제도를 대체하는 것은 생산관계가 생산력 상태에 부합해야 한다는 법칙이 작용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발전의 객관적 필연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정치적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생산수단 사유제를 기반으로 하는 그간의 사회경제 제도의 교체는 새로운 ‘사유제(私有制)’가 낡은 ‘사유제’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교체 과정에서 새로운 생산관계의 출현은 구사회의 모체 안에서 생산력 발전의 객관적 요구에 부응하여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일정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새로운 생산관계를 대표하는 신흥계급의 혁명은 이미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생산관계가 형성된 조건에서 진행된다. 혁명이 승리한 후, 새로운 정권의 힘을 이용하여 새로운 생산관계의 광범위한 발전을 위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새로운 생산관계가 사회적으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경제 제도를 수립하는 식이었다.
역사적으로 봉건제도가 노예제도를 대체하고, 자본주의 제도가 봉건제도를 대체하는 과정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탄생과정은 위의 과정과는 다르다. 사회주의 공유제(公有制)는 자본주의 사유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제도 내부에서 성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공유제는 자본주의 사유제의 부정이며, 따라서 자본가계급의 근본이익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결코 자발적으로 착취를 포기하고 생산수단을 프롤레타리아와 노동 인민에게 넘겨 생산수단의 사회주의 공유제를 수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국가기구를 장악하여 자본주의 제도를 보호하고,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투쟁을 억압할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생산의 사회화는 사회주의를 위한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을 준비했다. 일부 자본주의국가에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한 협동공장, 생산 및 공급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나타났다. 그러나 사회 전체 범위에서의 사회주의 공유제의 수립은 지금까지 프롤레타리아혁명 투쟁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이 되어 프롤레타리아 정권의 힘에 의존하여 점진적으로 실현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노동자혁명의 첫 단계는 프롤레타리아를 지배계급의 지위로 올리는 것"이며,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단계적으로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모든 자본을 빼앗아, 모든 생산 도구를 국가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의 손에 집중시킬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제도 수립의 이러한 특징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수립이 사회주의 경제제도 수립의 정치적 전제 조건임을 결정한다.
구 중국은 반식민지, 반봉건 성격의 사회였으며,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되었다. 비록 근대적 생산력의 발생과 함께 자본주의적 경제 성분도 일정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독점자본주의라는 "세 개의 큰 산(三座大山)"의 억압과 착취로 인해서 중국 사회생산력의 발전이 심각하게 저해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반식민지, 반봉건의 구 중국은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통해서 생산력을 해방할 수 없었으며, 이는 중국 근대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구 중국 사회의 주요모순은 프롤레타리아와 광대한 노동 인민이 "세 개의 큰 산"과 맞서는 모순이었으며, 중국 인민의 머리 위에 있는 "세 개의 큰 산"을 타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범주에 속했다.
구 중국의 경제 상황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 계급적 특징은 오직 중국 노동자계급만이 중국 민주혁명의 지도적 책임을 짊어질 수 있음을 결정했으며, "세 개의 큰 산"을 타도하고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신중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민주주의 혁명을 추진토록 했다. 신민주주의 혁명이 승리한 후 적절한 시기에 다시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환되게 된다. 따라서 구 중국의 사회적 성격은 중국 사회가 두 단계를 거쳐야 함을 결정지었는데, 첫 번째 단계는 신민주주의 사회의 건설이고, 두 번째 단계는 사회주의사회의 건설이다.
2.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과도기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수립된 시점부터 사회주의경제 제도의 기본적인 확립까지, 이 사이에는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필요하다. 이 시기를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로의 과도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가 끝나야 비로소 사회주의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중국의 사회적 특성으로 인해서, 중국 프롤레타리아가 이끄는 혁명은 두 단계로 진행되어야만 하였다. 중국의 과도기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직접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중국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도기를 거쳐야 하며, 이는 객관적 경제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승리한 이후, 사회주의경제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경제와 기타 사유제에 기초한 경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개혁하고, 사회주의 공유제 경제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 임무의 완성은 상당히 긴 역사적 시기를 거쳐야 하므로 과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과도기는 경제 구조적으로 여러 경제 성분이 공존하는 특징을 갖는다. 과도기의 주요모순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사회주의 노선과 자본주의 노선 간의 모순이다. 과도기의 기본임무는 생산수단 사유제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던 여러 경제구조를, 사회주의 공유제 경제를 주체로 하는 경제구조로 변화시켜,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주의경제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다. 중국은 1952년에 당 중앙이 과도기의 총노선을 제시했는데, 그 실질적 핵심은 생산수단의 사유제를 사회주의 공유제로 개조하여 사회주의경제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3. 중국 사회주의경제 제도 수립의 경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 후, 프롤레타리아는 정권의 힘을 이용하여 생산수단 사유제를 점진적으로 소멸시키고 개조함으로써, 사회주의 경제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지배계급이 된 중국의 프롤레타리아 앞에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사유제가 놓여있었다. 즉 자본주의 사유제와 농업 및 수공업의 개인 사유제인데, 이 두 가지 사유제가 공유제로 전환되는 경로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1) 대자본의 몰수, 사회주의 전(全)인민소유제 수립
자본주의 사유제에 대해서는 "수탈자를 수탈한다"는 방식으로 사회주의 공유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탈은 자본의 크기와 국민경제에서의 위치 및 역할, 그리고 대·중·소 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따라서 서로 다른 수탈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즉, 대자본은 무상으로 몰수하고, 중소자본은 평화적으로 매수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먼저 자기 정권의 힘을 이용하여 대자본을 몰수해야 한다. 대자본에 대한 몰수는 이러한 자본의 경제적 지위와 대자본가 계급이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구 중국에서 대자본은 주로 ‘관료 독점자본’을 가리키는데, 이는 제국주의에 의존하고 봉건주의와 결탁하여 구 중국의 경제 명맥을 독점하였으며, 중국 생산력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반동 통치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이 전국적으로 승리한 후, 즉시 전국적 범위에서 관료자본을 몰수하여 사회주의 전인민소유제의 국유경제로 전환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가 이끄는 국가가 국민경제의 명맥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사회주의경제 제도 수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중국에서 관료 독점자본의 몰수는 이중적 혁명의 성격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그 매판성과 봉건성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이는 민주혁명의 성격에 속하고, 다른 한편 독점자본을 소멸시키는 것은 사회주의혁명의 성격에 속한다.
2) 중소자본 개조, 사회주의 전인민소유제 강화
중국의 중소자본은 민족자본을 가리킨다. 민족자본은 민주주의 혁명 시기와 사회주의혁명 시기에 모두 이중적인 역할을 하며, 적극적 측면과 소극적 측면 양면성을 지닌다. 이와 관련하여 민족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한 정치적 태도에서도 이중성을 보이는데, 특히 신중국 수립 후에는 자본주의 발전을 희망하는 측면과, 공동강령을 지지하고 공산당과 인민정부의 지도를 받아들이는 측면을 동시에 가졌다.
민족자본주의 경제의 이 같은 이중적 역할과 민족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태도의 이중성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는 "평화적 매수" 방식을 통해 민족자본주의 경제를 개조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를 통해 급격한 변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괴와 손실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국 프롤레타리아는 강력한 국가기구를 수중에 장악하고 있었고, 관료자본 몰수를 기반으로 강력한 사회주의 전인민소유제 경제를 수립함으로써 국가의 경제 명맥을 장악하였다. 또한 농업 협동화의 발전을 통해 노농동맹은 협동화를 기반으로 더욱 공고해져 민족 부르주아지를 더욱 고립시켰다. 이러한 유리한 정치경제적 조건으로 인해서 민족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의 ‘매수 정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중국에서는 민족자본에 대한 "평화적 매수"가 실현되었다.
중국은 민족자본에 대한 매수에 있어서 이용, 제한, 개조의 정책을 채택했다. 민족자본주의 경제가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유익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용하고, 사회주의와 인민 생활에 불리한 역할에 대해서는 제한하였다. 다음으로, 초급에서 고급으로 발전하는 국가자본주의 형식을 통해 민족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여 사회주의 전인민소유제 경제로 전환했다.
중국이 민족자본에 지불한 매수금은 전 산업에 대한 공사합영(公私合營) 이전에는 ‘이윤 분배’ 형식을 취해서 자본가들이 일부 이윤을 얻게 했다. 전 산업에 대한 공사합영 이후에는 기업 이윤 중에서 자본가들이 그들의 보유 주식 금액에 따라 매년 5%의 고정 이자를 지불했다. 1966년에 이르러 자본가들에 대한 고정이자 지급은 중단되었다. 중국은 민족자본주의 기업을 개조하는 동시에 민족자본가들도 개조했다. 사상교육과 그들이 기업의 생산경영 활동에 참여하도록 배치함으로써, 자력으로 노동하는 노동자로 만들었다.
중국의 민족자본에 대한 "평화적 매수"는 1956년 말에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매수 이론과 중국의 혁명적 실천이 결합하여 얻은 중대한 성과로서, 창조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3) 개인 사유제 개조, 사회주의 ‘집체소유제’ 수립
프롤레타리아가 정권을 수립한 후 사회주의경제 제도를 수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농업과 수공업의 개인 사유제를 사회주의 공유제로 변화시키고, 개인 농민과 개인 수공업자들이 사회주의 길을 걷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소생산자(쁘띠부르주아지)를 수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이다. 개인 경제의 개조는 자발성을 기초로 모범 사례를 통한 시범, 사상교육, 국가 지원을 통한 소생산자들이 협동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유도함으로써 사회주의 노동 대중의 집체소유제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 중국의 농민적 개인 경제에 대한 개조는 상호 원조의 조직, 초급 협동조합, 고급 협동조합이라는 세 단계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형식과 절차를 통해서 실현되었다. 고급 농업생산합작사의 설립은 농업 개인 경제가 사회주의 노동 대중의 집체소유제 경제로 변화했음을 상징한다. 도시 개인 수공업은 일종의 소상품 경제로,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때문에 그 개조는 유통영역에서부터 시작하여 공급-판매 협동조직을 설립하고, 이후 생산영역의 협동으로 나아가 생산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은 1952년에 ‘과도기’ 총노선을 제시한 이래, 1956년 말까지 개인 농업, 개인 수공업 및 민족자본주의 상공업에 대한 사회주의 개조를 기본적으로 완성하였다. 이로써 사회주의 공유제의 주체적 지위를 확립함으로써 중국의 과도기는 종결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로의 전환을 완성하여 사회주의경제 제도를 수립했다.
물론 이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주의 개조가 수억 인구를 가진 대국에서 진행되고 또한 전례 없는 심오한 혁명이었기에, 작업 과정에서 일부 결점과 편차도 나타났다. 사회주의 개조 과정이 너무 급하게 추진되고, 작업이 너무 거칠거나 변화가 빨랐으며,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획일적인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개조를 통해 전체 국민경제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중국에 사회주의경제 제도가 마침내 수립되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건국 이래 당의 몇 가지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1981.6.27)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보면, 수억 인구를 가진 대국에서 이렇듯 복잡하고 어렵고 심오한 사회변혁을 비교적 순조롭게 실현하고, 공업과 농업 및 전체 국민경제의 발전을 촉진한 것은 실로 위대한 역사적 승리다." 고 말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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