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
전국노동
-
전국노동
-
전국노동
-
정치·경제
-
오피니언
-
국제소식
-
오피니언
한때 시중에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서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지옥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도시는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말과 대구를 이루는 표현이다. '재미'라는 단어에 우쭐하기 쉽지만 서울, 즉 대한민국의 실상을 이렇게 서글프고 적확하게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지옥 앞에 아무리 좋고 화려한 수사를 붙여도 지옥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이 지옥이라는 지표는 수두룩하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이 경쟁적인 나라,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이면서 불평등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 타인에 대한 관용이 가장 낮은 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엄청 높은 나라 등등을 보면 가히 지옥 중에서 상 지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해냄, 김누리 지음, 2024년 3월)는 한국의 지옥이 경쟁 교육에서 출발했고 양성됐다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한 책이다.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적당히 고치는 정도의 개선으로는 이런 지옥에서 탈피할 수 없고 교육 철학과 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가 경탄하는 민주주주의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악의 불평등,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 '지옥 같은 사회'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삼각의 이데올로기 체제 때문"이라고 되풀이 강조한다. 즉, '경쟁-능력주의-공정'의 삼각 이데올로기 체제가 한국 사회를 야만으로 만든 가장 결정적인 관념 체계라고 진단하고, 이를 '야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의사, 법조인, 관료 등이 성숙한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사익과 오만에 빠져 나라를 망가뜨리는 주범 노릇을 하는 것이 '야마의 트라이앵글'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얘기다.
지난 100년 동안 이런 황폐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제국주의의 노예(황국 신민)', 해방 이후 독재 정권에서는 '국가주의의 도구'(반공 투사, 산업 전사), 민주화 시대에는 '자본주의의 부품(인적 자원)을 만드는 게 교육 목표가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어렵사리 이룩한 민주 정부조차도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을 키우는 일을 교육의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토로한다. 여기에는 86세대의 책임이 크다는 점도 통렬하게 지적한다. 그들은 민주화에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교육에서는 '군사독재 하의 비정상'을 '민주 정부 하의 비정상'으로 수평이동시켰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모두 5부 18장으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열등감과 모멸감을 내면화하는 한국 학교와, 자본에 장악당한 대학의 현실을 적나라에게 보여준다. 2부에서는 그가 교육 파괴의 주범으로 꼽은 '야만의 트라이앵글', 즉 경쟁, 능력주의, 공정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풍부한 사례를 들며 해부한다.
3부에서는 독일 전문가답게 경쟁과 서열이 없는 독일 교육의 사례를 통해 경쟁 교육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보여준다. 독일도 원래부터 경쟁과 서열이 없는 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1968년 혁명을 기점으로 나치의 유산을 청산하려는 운동 속에서 '사유하는 사람'을 기르는 비판 교육이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나온 교육 모토가 바로 책 제목인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4부는 아이들이 경쟁 교육의 지옥에서 벗어나 존엄 교육을 받을 권리를 찾고 교사들이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잘못된 교육의 피해 당사자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교육혁명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김 교수가 제안하는 교육혁명의 내용이 나온다. 김 교수는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① 능력주의에서 존엄주의로, ② 성장을 위한 교육에서 성숙을 위한 교육으로, ③ 경쟁 교육에서 연대 교육으로, ④ 지식 교육에서 사유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울려 교육 목표를 인적 자원 육성에서 민주 시민 양성으로, 교육 방식을 경쟁에서 연대로, 교육 효과를 불행감에서 행복감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교육혁명을 이루는 입구로 세 가지의 폐지를 주장한다. 첫째 대학입시의 폐지, 둘째 대학 서열의 폐지, 셋째 대학 등록금의 폐지다. 왜 이런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하는 이유를 독일 교육의 성취와 비교하면서 꼼꼼하게 설명한다.
한국에서 가장 공부 잘한다는 학생이 간다는 대학과 과가 '내란대' '내란과'로 조롱 받는 작금의 현실은, 한국의 기존 교육을 깡그리 뒤엎고 새로운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한다. 김 교수의 책은 시기적으로 내용적으로 그런 요구에 아주 잘 부응한다. 새 정부의 교육 정책과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을 것 같다.
아직 이재명 정부의 교육부 장관이 임명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누리 교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교육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